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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최저임금

입력
2014.07.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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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초기 영국 방적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주급 15실링(1파운드=20실링) 내외를 받았는데,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해 온 가족이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1819년 맨체스터에선 빈곤의 극단까지 몰린 방적공장 노동자 6만명이 시위에 나섰다가 기병대에게 11명이 희생되는 ‘피털루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비슷한 문제가 잇따르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노동자 임금 수준을 법규로 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발전했다.

▦ 마침내 최저임금제에 관한 최초의 법규로 1894년 뉴질랜드에서 ‘산업조정중재법’이 등장했다. 이후 1928년엔 국제노동기구(ILO)가 ‘최저임금결정기구의 창설에 관한 조약’을 기반으로 최저임금제의 국제적 확산을 본격 추진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도 만만찮았다. 경제학에서는 최저임금제에 의해 기존 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강제로 지급해야 할 경우, 기업은 늘어난 비용만큼 고용을 줄이려고 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줄고 실업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건 뉴질랜드에 비해 100년 가까이 늦은 1986년이다. 이미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최저임금제 실시 근거를 두었으나 실제 규정을 운용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유능하면서도 값싼 노동력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비약적 성장을 뒷받침해온 핵심 요소였기 때문에 그 틀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정 때문인지 2000년부터 최저임금제 적용 대상이 근로자를 고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확대됐지만, 법정 최저임금 수준은 아직 평균임금의 38% 수준에 불과해 50% 이상인 선진국들에 비해 크게 낮다.

▦ 우리 최저임금제의 문제는 임금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그것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계의 요구에 매번 최저임금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기업과 자영업계의 사정을 내세우지만 옳지 않다. 적극적 의지만 있다면, 최저임금에 대한 영세사업자의 부담을 덜도록 혜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바꿀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최근 5,580원으로 인상됐지만, 소득양극화 완화를 위해서라도 근본적 정책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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