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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 출동… 슈퍼주인 "집 못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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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 출동… 슈퍼주인 "집 못 알려준다"

입력
2014.06.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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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아동보호기관 가 보니

아직도 '남의 가정사' 취급하는 이웃, 출생신고 안 한 부모들 방임도 학대

6명이 6개구 관할… 커버엔 역부족, 전문성 위해 팀 분리하고 충원돼야

3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서울시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모래치료실에서 최상국(왼쪽) 관장이 심리치료 상담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hongik@hk.co.kr
3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서울시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 모래치료실에서 최상국(왼쪽) 관장이 심리치료 상담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hongik@hk.co.kr

26일 오후 8시 10분 서울시동부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동부기관)에 “어린 여자 애가 늦은 시간에 보호자 없이 놀이터를 배회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퇴근 전이던 어해룡 동부기관 상담팀장과 또 다른 상담원 1명이 곧 출동했지만 아이는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이튿날 날이 밝은 뒤 다시 현장을 찾은 상담원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아이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아이는 동네에서 유명했다. 하지만 동네 슈퍼마켓 주인은 대뜸 “누가 신고했어요?”라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상담원이 “신고자는 밝힐 수 없다”며 집을 알려달라고 설득했지만 “그 아이 아무 문제 없다”고 부인하다 끝내 “내가 몇 번 말해 봤는데 애 엄마가 싫어해”라며 입을 다물었다.

정원(7·가명)이를 찾아낸 것은 근처 집을 하나씩 탐문한 끝이었다. 마침 아빠와 동생 정미(3·가명)가 집에 있었다. 정원이 엄마는 월 160만원을 버는 식당 일로 바쁘고 아빠는 몇 달 전 손을 다친 뒤 집에 있다.

자매는 재혼한 부부의 친 자녀지만 엄마가 전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채여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자매는 태어나서 어떤 의료·교육적 혜택도 받지 못했다. 부모는 아이가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였다. 정원이 아빠는 “정원이가 양쪽 어금니가 썩어 아프다던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제일 급한 건 내년으로 닥친 정원이의 초등학교 입학 문제다. 정원이는 어해룡 상담팀장에게 “친구가 없어 심심하다” “유치원 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정원이가 여름에 겨울 외투를 입고 장화를 신은 채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다 종종 경찰 손에 붙들려 집에 돌아오는 이유였다. 정원이 아빠는 “애가 잠깐 설거지하거나 한 눈 파는 사이에 나가버린다”며 “애가 경찰과 함께 집에 돌아온 건 두 번 정도 있었지만 요즘은 안 그런다”고 변명했다.

아동학대 부모 감싸고 도는 이웃들

어해룡 상담팀장은 “정원이의 경우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것부터 명백한 방임”이라고 말했다. 방임은 지난해 전체 학대 중 26.1%(1,778건)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이다. 하지만 심하게 때리는 것이 아닌 이상 방임을 학대로 보는 인식은 크게 부족하다. “집을 알려줄 수 없다”던 슈퍼마켓 주인 같은 경우다. 더욱이 부모들은 친권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아동보호기관이 격리 조치를 취한 아이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고, 아이에게 필요한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최인용 마포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팀장은 “어린이집 선생님이 알몸체벌을 하면 난리가 나도 부모가 알몸체벌을 하면 훈육이라고 덮어두는 게 우리 사회”라며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9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특례법)이 시행되면 그 동안 전무했던 친권을 제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피해아동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이 가정법원에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하면 일정 기간 친권이 정지되고 법원이 지정한 임시후견인이 아이를 보호한다.

정원이 자매의 경우 그래도 부모가 출생신고를 안 하겠다고 버티면 사실상 방법이 없다. 김경희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팀장은 “출생신고는 임시후견인의 권한에 해당하지 않아 부모를 설득하는 게 최선”이라며 “출생신고를 병원이 하는 출생등록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어해룡 상담팀장은 “지역 주민센터와 함께 출생신고를 돕고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계하겠다”고 말했다.

학대 가해자이자 친권자인 부모들과의 실랑이는 상담원들을 끝없이 소진시킨다. 동부기관에는 26일에도 올해 1월 격리 보호시킨 해정(6·가명)이 아빠가 찾아와 사무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돌아갔다. 시설에 있는 딸 아이를 외출시키려다 면회만 가능하다는 말에 격분한 것이다. 담당 상담원은 “해정이는 아빠한테 자주 몽둥이로 맞아 온몸에 상처가 많았고, 엄마는 이런 아빠와 떼 놓는다며 외가에 맡기고 연락이 두절됐는데, 외가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와 지적 장애가 있는 외삼촌이 거주하는 형편이라 도저히 아이를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최상국 동부기관 관장은 “사무실에 흉기를 갖고 와 위협하거나 ‘니가 뭔데 애를 데려가냐’며 욕설을 퍼붓는 부모들을 보면 이 일에 회의감이 든다”며 “상담원들이 그만두는 것도 이런 이유가 꽤 된다”고 말했다.

의심 신고 늘지만 대응 인력 없어

27일 오후 현장조사를 마치고 돌아간 동부기관 사무실에선 상담원들이 이날 새벽 아빠한테 밟혀 눈가가 시퍼렇게 멍든 채 찾아온 중1 남학생을 붙잡고 있었다. “집에 가겠다”는 학생을 “지금 집에 가면 위험하다”고 말리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경찰에서 아버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종아리가 찢어진 초등학생의 진술 녹화에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전화벨은 울리고 또 울렸다.

동부기관에는 하루 평균 2~3건, 한 달 평균 65건 정도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된다. 올해만 250건이 접수됐다. 이대로라면 지난 한 해 접수된 신고 건수(340건)를 훌쩍 넘긴다. 울주, 칠곡 아동학대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돼 국민적 공분을 산데다, 아동학대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경찰에 학대 사건에 적극 개입하라는 지침이 하달된 탓이다. 전국적으로 지난해보다 월 평균 30% 학대 의심 신고가 늘어났다. 아동학대를 ‘남의 가정사’로 치부하는 분위기에서 고군분투하던 상담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열악한 인프라가 현실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부기관에는 상담원이 관장 포함 6명뿐이다. 이들이 동대문구, 중랑구 등 6개 구와 관할 7개 경찰서에서 발생하는 학대 사건을 담당한다. 현장조사를 나갈 때는 2인 1조 원칙에 따라 움직이니 3팀이 해당 지역을 커버하는 셈이다.

아동학대특례법이 시행되면 학대 의심 신고에 반드시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동행해 현장조사를 해야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걱정부터 앞선다. 한 해 최소 1만건 이상 현장조사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국의 상담원 375명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국 50개소가 있지만 시군구 단위로 따지면 없는 곳이 태반이고, 한밤 중 접수된 신고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이다. 최인용 상담팀장은 “경찰과 비교해 교대 인력도 없고 접근성도 떨어져 경찰에서도 현장조사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긴급한 현장조사에 밀려 정작 중요한 재학대 예방을 위한 사례관리(사후관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동부기관의 경우 상담원 1인당 평균 20건의 사례를 맡고 있지만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상담을 미루고 달려가야 한다. 김경희 상담팀장은 “현장조사와 사례관리 업무는 극단적으로 다른 만큼 전문성을 위해 팀을 분리하고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아동학대특례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이처럼 인력확충 등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데 지자체는 관심이 없다”며 “아동학대예방사업을 국가 사무로 환수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전국에 최소 100개소, 상담원을 기관 당 15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의 한계와 직업적 회의 속에서도 상담원들이 일을 놓지 않는 것은 보호자가 가해자인 학대피해 아동의 손을 잡아줄 이가 자신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김경환 전북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부모는 행방불명이고 출생신고도 안 돼 학교도 못 다니던 아이에 대해 지역 산부인과를 샅샅이 뒤져 출생증명서를 재발급해 출생신고를 했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런 아이들에게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 위험에 빠진 아이를 구하러 상담원들은 오늘도 현장을 향하고 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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