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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 뭉쳐 서로 위로했던 유족들 반목에 '덧나는 아픔'

입력
2014.06.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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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 벽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글귀가 적혀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 벽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글귀가 적혀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지난 2일 오후 대구 중구 대구시청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희생자 추모재단인 '2·18 안전문화재단(가칭)'구성을 논의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지난 2일 오후 대구 중구 대구시청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희생자 추모재단인 '2·18 안전문화재단(가칭)'구성을 논의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10일 오전 대구지하철 반월당역에서 열린 대형재난 발생 대비 훈련에서 소방관들이 산소호흡기를 이용한 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대구=뉴시스
10일 오전 대구지하철 반월당역에서 열린 대형재난 발생 대비 훈련에서 소방관들이 산소호흡기를 이용한 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대구=뉴시스

남은 국민성금 사용 싸고 갈등

상당수 유족이 염증 느껴 연락 끊어

추모공원 거론되는 곳선 주민 반발

조금 더디더라도 의견 모으고

정부와 유족 간 신뢰 쌓는 게 중요

2일 오후 대구 중구 대구시청 인근의 한 커피숍. 심각한 표정의 남녀 10여명이 무리를 지어 커피숍으로 들어선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으로 가족을 잃거나 다친 이들이다. 희생자 추모재단인 ‘2ㆍ18 안전문화재단(가칭)’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이 자리는 처음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점점 고성이 오갔다. 급기야 한 유가족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2003년 날벼락 같은 가족의 죽음 앞에 부둥켜안고 서로를 위로하던 유가족들의 상처는 세월이 흐르며 또 다시 덧나고 있다.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의 가족들은 이제 반목과 분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유가족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친구를 만나서 헤어져도 가슴이 아픈데, 서로 껴안고 울고불고 하던 가족들이 반대편에 서서 손가락질을 하게 되니 마음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국민성금 사용 놓고 사분오열

아무런

인연도 없었지만 한 날 한 시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가족들은 사고 직후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사회적인 기억을 남기자”는 대의 아래 똘똘 뭉쳤다. 추모공원과 안전재단을 만들자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초기부터 대구시와 협상을 했던 대구지하철희생자대책위원회(대책위ㆍ위원장 윤석기)와 입장을 달리 하는 유가족들이 나오면서 2010년 말 대구지하철참사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ㆍ위원장 박경찬)가 꾸려졌다. 지금 유가족들은 두 단체를 중심으로 둘로 쪼개져 있다.

역설적이게도 너무 많이 모인 국민성금이 갈등을 부추겼다. 대구시와 비대위는 2003년 당시 모금된 672억원의 국민성금 중 사망자와 부상자 지급분을 제외한 114억원으로 추모재단을 운영하기로 합의(2003년 5월)했고, 2010년 11월에는 2ㆍ18안전문화재단도 출범했다. 그러나 일부 유가족들이 재단 이사들이 대책위와 가까운 이들로만 구성돼 있다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부상자들은 부상자대로 재단운영에 관여할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구시가 유가족들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성금 잔여분을 출연하지 않고 있다. 국민성금 잔여액을 출연하지 않고 있는 대구시에 대해 지난 2월 소송을 제기한 대책위 윤석기 위원장은 “대구시가 재단운영에 관여하기 위해 유가족들을 분열시키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구시 관계자는“시는 모든 유가족들의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끝까지 중재해 보겠지만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소송으로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유족단체들끼리 갈등하자 상당수의 유가족들은 이들의 활동에 염증을 느끼고 연락을 끊었다. 언제까지나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버팀목이 돼 줄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이 얼굴도 보기 싫은 사이가 됐다.

추모공원 선정 어렵자 이면합의

추모공원 설립 문제는 또 다른 쟁점인데 이는 시가 자초한 면이 크다. 유가족과 시는 추모공원을 설립하자는 것에 참사 직후부터 합의했으나 대상지로 거론되는 곳마다 주민 반발에 부딪쳤다. 설립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추모공원에 중앙정부가 출연한 출연금(100억원)의 반환시한인 2005년 12월이 다가오자 다급해진 시는 용수동 시민안전파크를 추모공원으로 조성하되 인근 상인들의 반발을 고려해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말자는 합의를 했다.

이후 시민안전파크가 문을 열자 유족들은 시민안전파크에 수목장 형태로 희생자 32명의 유골을 뿌렸다. 대구시의 내부문서에는 그 무렵(2009년 7월) 대구시 관계자가 유가족들에게 산골(散骨)은 불법이지만 “몰래 수목장식 산골(散骨)하는 것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약속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자 대구시는 이면합의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시와 대책위는 “아직 추모공원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시는 이들이 유골을 ‘암매장’했다며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비대위의 손을 들어줬다. 많은 유가족들은 주변 상인들과 유가족들의 양쪽의 눈치를 보며 시가 책임지지도 못할 이면합의를 해줘 사태를 꼬이게 만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사고 수습 담당자의 역할 중요

조심스럽지만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들도 같은 상황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아직은 실종자 수습이 최우선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앞으로 생존자인지 사망자인지, 단원고 학생인지 일반인인지 등에 따라 이해가 달라 서로 갈등에 휩싸여 또 다른 상처를 안을 수도 있다.

추모공원 설립을 놓고 대구시와 협상했던 황순오(45) 전 비대위 사무국장은 유가족간 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열 걸음을 가는 것보다는 조금 더디더라도 열 사람이 한 걸음 간다는 생각으로 유가족들이 의견을 모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족 중 일부만 많은 것을 얻으려 하지 말고 전체가 동의하는 것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정부와 유가족간 신뢰형성도 중요하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사고 수습을 위한 정부의 특별지원단 위원으로 활동했던 조기현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사고를 수습하다 보면 사람마다 생각과 주장이 달라 유가족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수습 담당자는 모든 유가족에게 똑같은 태도로 대하고 근거규정을 따지기 전에 유가족의 아픔을 배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사무국장은 “참사 이후 지금까지 시 담당 공무원이 20명 가까이 바뀌었다”며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전문가에게 수습업무를 전담시켜야 갈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구=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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