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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차 북핵위기 때 사실상 전쟁대비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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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차 북핵위기 때 사실상 전쟁대비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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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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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개전원칙 통보... 당시 이병태 국방 "전쟁만은 안 돼" 김일성 사망 전 美와 관계개선 추진

1994년 4월 20일 이병태(오른쪽) 국방장관과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이 우리 국방부 소회의실에서 1차 북핵 위기 대응 원칙을 논의하는 회담을 갖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4년 4월 20일 이병태(오른쪽) 국방장관과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이 우리 국방부 소회의실에서 1차 북핵 위기 대응 원칙을 논의하는 회담을 갖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0년 10월 10일 조명록(왼쪽)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0년 10월 10일 조명록(왼쪽)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반도가 전쟁 위기론에 휩싸인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은 북한 도발에 맞대응 하겠다는 내용의 3가지 개전 원칙을 한국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이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어떤 전쟁이든 반대한다는 뜻을 미 측에 전달했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 조지워싱턴대 부설 국립안보문서보관소(NSA)가 5일 공개한 1,600건의 한국 관련 기밀문서에서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의 문서에는 1차 핵 위기 이후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 북미 제네바합의 그리고 조명록 북한 차수의 방미까지 1994~2000년 빌 클린턴 정부시절 전개된 한반도의 급박한 상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美 1차 핵위기 때 전쟁 불사 결심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 발언 한달 뒤인 1994년 4월 20일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과 이병태 국방장관은 북한 위협에 대응할 원칙에 합의한다. 페리 장관은 한반도 전쟁에 대한 미국의 세가지 원칙을 설명했다. 미국이 먼저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은 전쟁을 유도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국은 약하게 보여 (오판에 의한)전쟁을 초래하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지만, 북한이 도발해온다면 미국은 피하지 않고 맞대응 하겠다는 뜻이다. 페리 장관은 “북핵의 외교적 해법이 바람직하나 이 방법이 실패하면 제재가 불가피하고, 제재는 긴장을 높일 수 있어 한미 양국이 군사적 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사실상 전쟁 대비를 주문했다. 당시 북한은 제재는 곧 전쟁이라고 위협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북이 도발하면 제2의 한국전쟁을 불사하려는 미국과 또 다른 전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 차는 컸다. 이병태 장관은 페리 장관에 동의하면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한국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은 초토화되고 6ㆍ25 때보다 100배나 큰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한국에게 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명록 방미 앞두고 적대관계 해소 논의

2000년 10월 조명록 차수의 방미를 앞두고 미 국무부는 ‘현안 점검 사항’이란 비밀문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에는 ‘한국 통일 이후 공개할 것’이란 조건이 붙어 당시 미국이 한국 정부가 예민해 할 사안들을 조명록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만 공개된 이 문서에는 ▦반세기에 걸친 양국 적대 관계의 해소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등이 포함돼 있다.

1996년 초 작성된 국무부의 비망록에는 2년 전 맺은 북미기본합의서 이후 전개될 북미 관계 로드맵이 담겨 있다. 당시 미국은 대북 추가 조치로 식량 원조, 대북 제재 해제, 안정적인 중유 제공, 미군 유해 반환, 북미간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제시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3일 뒤 작성된 주한 미대사관의 한국 상황 보고서는 한국인들이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죽음의 천사’로 부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김 주석이 카터 전 대통령과 회담한 뒤 한 달 만에 숨졌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김일성 사망으로 북한 변화 기회 놓쳐

1998년 5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따라 방한한 국무부 인사들과 한국 관료들은 북한 변화를 주제로 대화했다. 한국에선 이홍구 주미대사,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 라종일 안기부 1차장, 정덕구 재정경제원 차관이 나왔다. 이들은 김 주석이 북한 붕괴를 막기 위해 제도 개혁을 추구했고 북한의 철천지 원수인 미국과 관계 개선도 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런 방안들이 추진력을 잃으면서 북한 변화의 기대는 사라졌다. 이들은 북한의 미래를 비전 없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표류 정권으로 전락하거나, 위협과 수탈로 정권과 엘리트만 유지되는 마피아식 국가로 남거나, 아니면 당 핵심 세력이 개혁을 주도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30억달러 받고 한국 체면 세워줘

1994년 8월 북미 제네바 협상이 급진전될 때 국무부 정보조사국(INR)은 한국의 반발을 고려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통미봉남’ 비판 여론이 들끓자 김영삼 대통령까지 나서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3개월 뒤 제네바 합의가 성사되자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은 한국을 달래는 한편 경수로 비용 30억달러 부담을 요구하기 위해 방한했다. 방한 목적이 성사되자 윈스턴 로드 동아태 차관보는 비망록에서 한국이 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해 김영삼 정부의 체면을 세워주도록 건의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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