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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안 남기는 일본의 빵집, 제빵으로 읽는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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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안 남기는 일본의 빵집, 제빵으로 읽는 자본론

입력
2014.06.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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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ㆍ정문주 옮김, 더숲 발행ㆍ235쪽ㆍ 1만4,000원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ㆍ정문주 옮김, 더숲 발행ㆍ235쪽ㆍ 1만4,000원

제목부터 별나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니. 한국이야 대기업 계열 빵집 체인들이 골목골목을 점령했지만 일본은 제빵의 나라 아닌가. 일본에서 시골빵집이 뭐 특별하냐 싶은데 좌파의 바이블 <자본론>이 묶이면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다.

역시나 저자의 이력이 유별나다. 어려서부터 농촌생활을 꿈꾸다 고교 졸업 뒤 7년을 아르바이트로 살았다. 뚜렷한 계획 없이 살아가는 전형적인 ‘프리터’였다. 시골 농부가 되고 싶어 뒤늦게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서른이나 된 ‘중늙은이’로 직원이 스무명 남짓한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겨우 취직했다. 남들이라면 어떤 불합리한 상황도 견디고 버텨내며 생존만을 생각할 텐데 저자는 달랐다.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산지가 다른 사과를 섞어 눈속임 납품을 하는 걸 보고 직업적 회의를 느꼈다. 엄밀히 말하면 ‘원산지 허위 표시’였기 때문이다. 뒷돈을 은밀히 챙기는 직장 동료의 비리를 보고했는데 보상 대신 집단 따돌림이 돌아왔다.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인데도 직장은 자본이 구축한 거대 유통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저자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시스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루살이로 살던 어느 날 선잠을 자는데 한번도 뵌 적 없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빵을 만들어보렴.” 저자가 제빵의 길로 입문한 계기다.

저자는 4년 반 동안 네 군데의 빵집을 옮겨 다니며 빵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새벽 2시에 출근해 저녁 무렵 퇴근하는 일상이 고달팠다. 그래도 차근차근 준비해 빵집을 열었다. 2008년 글로벌 경제 한파가 몰아 닥친 무렵이었다. 불황에 괴로워할 때 학자 출신 아버지가 칼 마르크스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노동착취를 당했던 저자의 빵집 직원 생활이 <자본론>이 쓰여졌던 19세기 영국 런던 노동자들의 삶과 겹쳤다.

저자는 빵의 생산과 판매 과정을 <자본론>에 대입해 설명한다. <자본론>의 중심 용어인 ‘사용가치’와 ‘노동’, ‘교환’ 등을 빵집 상황에 빗대 풀이한다. 먹물 좀 든 사람이라야 접근할 수 있는 <자본론>의 문턱이 이 책으로 꽤 많이 낮아진다. 균을 이용해 빵 만드는 과정이 각 장의 앞에 그림으로 설명돼 제빵 상식도 전한다.

저자의 시골빵집 경영이념은 ‘이윤을 남기지 않기’다. 이윤을 남기면 자본이 쌓이고 투자를 통한 이자가 생겨나며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을 낳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돈도 썩어야 한다(자본 축적이 돼선 안 된다는 말)고 본다. 천연균을 활용해 맛난 발효 빵을 만들 듯 ‘부패하는 경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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