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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상주본 기증 못해” 오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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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상주본 기증 못해” 오리발

입력
2014.05.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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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혐의 무죄 확정되자 말 뒤집은 수집상

2008년 7월 배익기씨가 경북 상주 자신의 집에서 발견했다며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왼쪽)과 1940년 발견돼 국보 70호로 지정된 서울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본'. 연합뉴스
2008년 7월 배익기씨가 경북 상주 자신의 집에서 발견했다며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왼쪽)과 1940년 발견돼 국보 70호로 지정된 서울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본'. 연합뉴스

가격을 매길 수조차 없다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훔쳐 해체, 은닉한 혐의로 기소된 수집상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무죄가 확정되면 숨겨 둔 상주본 실물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누누이 공언했던 수집상은 말을 뒤집어 무가지보(無價之寶)가 세상 빛을 보기 어려워졌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9일 경북 상주시의 골동품업자 조용훈(2012년 사망)씨로부터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배익기(51)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배씨가 고서를 훔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배씨는 이날 선고 직전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난 국가에 기증한다는 말한 적 없고, 재판부가 나서 중재니 뭐니 호들갑 떤 것을 언론에서 예단하고 기증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재판부와 언론에 “무죄 판결이 나면 전문기관에 위탁 후 기증하겠다”고 수차례 밝혔던 말을 번복한 것이다. 배씨는 “숨진 조씨가 자기 것도 아니면서 국가에 기증을 했다”며 “국가에 소유권이 없다는 소송을 진행하겠다”고까지 밝혔다.

문제의 상주본은 배씨가 2008년 7월 “집 수리 도중 발견했다”며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진위 여부를 밝혀 줄 것을 요청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실물을 살펴 본 전문가들은 간송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주석이 붙어 있고 보관 상태가 양호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국보급으로 평가했다. 상주본이 발견되기 전 훈민정음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 중인 간송본이 유일했다. 간송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조씨가 “배씨가 다른 고문서를 구입해 가면서 책상 위에 둔 것을 훔쳐갔다”며 소유권 확인소송을 제기하면서 상주본은 수난에 휩싸였다. 2012년 초 민사소송에서는 조씨가 최종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배씨는 상주본을 내놓지 않았다. 조씨는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그 해 5월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이후 배씨는 훈민정음 상주본을 낱장으로 분리, 비닐봉투에 넣은 뒤 자신만 아는 곳에 숨기자 문화재청이 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1심에서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에 이어 이날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배씨가 조씨의 민속당에서 발견한 고서가 훈민정음 해례본임을 알고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 상주본을 훔쳤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로 무죄가 선고된 원심이 그대로 인정된 것이다.

게다가 경북 안동시 서후면 광흥사 측도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배씨가 실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더욱 낮을 것으로 보인다. 광흥사 측은 국내 도굴계의 1인자로 알려진 서모(53)씨가 1999년 광흥사 나한상 내 복장유물 속에서 다른 유물과 함께 훈민정음을 훔쳐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씨는 훈민정음을 조씨에게 팔았지만 조씨는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것을 배씨가 훔쳐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주=김용태기자 kr8888@hk.co.kr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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