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형제·자매 작품들엔
사고가 할퀸 흔적 역력
"미술·음악·체육 교과
학생들 감정 표현 도와
상처 어루만져 줄 수 있죠"
세월호 침몰 참사로 희생된 한 단원고 학생의 여동생이 그린 그림 ‘오빠 방’은 열려진 문 사이로 보이는 책상, 의자 등 방 안의 가구를 담았다. 동생은 오빠 방을 검정색 크레파스로, 방 안은 파란색으로 칠했다. 방이 바다에 잠긴 듯한 모습이다. 문 밖에서 안을 주시하는 그림의 시선은 사고가 난 뒤 오빠 방에 들어가기 힘들어진 심리를 드러냈다. 단원고 재학생이 그린 그림 ‘음악동아리’에선 한 데 모여 있는 학생들 중 일부 학생들이 검은 선으로 표현됐다.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이다. 또 다른 단원고 희생 학생의 남동생이 그린 ‘침몰’이란 그림에선 세월호 침몰 후 선수만 물 밖으로 나와 있던 모습이 형상화됐다. 동생은 가라앉지 않은 선수를 빨간색 동그라미로 표시하고는 ‘우리 누나’라고 썼다.
‘나쁜 선장’ ‘입관식’ ‘교감선생님 유서’ ‘모래시계-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형제 자매와 단원고 1ㆍ3학년 학생들이 미술치료를 받으며 그린 그림과 만든 작품에 스스로 붙인 제목들이다. 이 아이들 가슴에 깊게 남은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경기 안산 지역 초중고교 예ㆍ체능 교과 교사 500여명이 이런 어려운 숙제를 안고 한 자리에 모였다.
23일 안산대에서 열린 ‘학생 트라우마 관리 워크숍’에서 공개된 학생들의 그림과 점토 작품에서는 이들이 겪고 있는 복잡한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선현 분당차병원 미술치료클리닉 교수는 “학생들 그림에는 검정색 등 어두운 색깔과 왜곡된 형태가 많다”며 “극도의 불안, 불만, 분노, 혼란, 우울한 감정 상태로 지속적인 치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주최, 교육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 주관으로 21일부터 사흘간 열린 워크숍에서는 정신ㆍ심리 치료 전문가들이 예ㆍ체능 교과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교수 방법을 소개했다. 미술, 음악, 체육 활동이 다른 교과에 비해 학생들의 애도 반응을 돕는 감정 표현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마련한 자리다.
전문가들은 먼저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소개했다. 단원고 학생들의 미술치료를 담당해 온 김선현 교수는 “바다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점토로 자유 작업을 하도록 해서 작품의 형태나 색깔을 살펴 보면 학생들의 정신ㆍ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치유도 된다”고 덧붙였다.
외상 회복 음악요법을 소개한 하은경 음악치료 임상연구소 소장은 “파도 소리를 들려줬을 때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휴가 같은 즐거운 이미지가 떠올랐다면 이후에는 공포감, 긴장감을 느끼는 학생이 있을 수 있다”며 “특히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 학생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또 교사가 수업 말고도 적절한 대답이나 반응만으로도 학생들의 정서적 회복을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희생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것을 금기시 하면 안 된다”며 “‘화내 봐야 뭐하니 울어 봐야 뭐하니’ ‘극복해야지’ ‘견뎌내야지’ 같은 충고는 학생의 경험과 감정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아이들이 관련 이야기를 했을 때 교사가 당황하지 말고 ‘네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도 힘든 감정이 드는데 너도 정말 힘들겠구나’ 정도로 반응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안산=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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