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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

입력
2014.05.0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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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부른 국민적 슬픔과 좌절감에 많은 국정 과제가 파묻혔다. 그 가운데 하나가 3월말 헤이그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전후해 논의가 활발해진 한일 양국관계의 회복 방안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양국 관계, 특히 정치관계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양국 정상이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몰라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양국 정부의 불편한 관계는 이미 양국민의 상대국 인식에 변화를 주어 관광 등 민간교류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양국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흐름이다. 양국이 조속히 일반적 이웃나라 관계를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양국 지도자와 외교당국의 과제로 떠오른 것도 그런 사정 때문이다.

한일 관계 냉각의 요인은 여럿이지만 핵심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독도문제는 당장의 해결책을 생각하기 어려운 데다 우리가 독도를 실제로 지배ㆍ경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측 주장은 짐짓 모른 척해도 그만이다. 오히려 예민한 반응을 보이거나 일일이 대응하다가는 문제 자체를 부각하는 것이 1차 목표인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수도 있다. 교과서 문제를 비롯한 역사인식 문제는 우선은 국민을 올바른 역사인식으로 이끌어야 할 일본 정부의 과제이자, 부단한 감시와 적절한 대응 등이 요구되는 장기 과제이다. 한편으로 강제징용을 비롯한 각종 식민지 피해와 관련한 청구권 및 손해배상 문제는 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으로 적어도 국가 사이에서는 끝났다.

이와 달리 위안부 문제는 양국의 해석 차이는 있어도 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된 ‘8개항 요구’에 포함되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50여 명의 생존 피해자가 모두 고령이어서 조속한 해결이 요구된다. ‘고노 담화’의 근거자료는 검증하되, 담화 자체는 유지할 방침이라는 일본 정부의 헷갈리는 방침을 놓고 벌어진 양국의 신경전에서 드러났듯, 이 문제만 풀리면 양국 관계의 회복 전망은 한결 밝아진다. 더욱이 한일협정 50주년인 내년까지 문제를 풀 수 있다면 그 상징적 의미는 더욱 커진다.

그런데도 문제가 처음 제기된 1990년 이래 4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양국의 인식은 점점 더 벌어졌다. 양국의 인식이 접근한 때가 있긴 했다. 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커밍아웃’에 이어 일본 정부의 조사가 시작됐다. 이듬해 가토 고이치 일본 관방장관은 ‘일본군 관여’를 처음 인정하면서 추가 조사를 약속했다. 93년 3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을 선언하면서 일본에는 물질적 보상이 아닌 진상규명만을 요구했다. 그것이 같은 해 8월의 고노 담화를 불렀고, 95년 무라야마 담화와 ‘아시아여성기금’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나 인도네시아 등과 달리 한국은 207명의 피해자 가운데 60명만이 기금의 보상금과 의료지원을 받는 데 그쳤다.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관되게 요구해 온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사죄, 배상’과 근본적으로 틀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때를 고비로, 또 일본의 정치변화와 맞물려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일본의 주류적 시각은 한국과의 거리를 넓히기 시작했다. 일부 극우파의 시각으로 여겨지던 ‘전시 성매매’ 인식이 널리 퍼지고, 아베 총리의 집착으로 유명한 ‘협의의 강제성’논의, 즉 조직적 강제동원의 증거는 없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한편으로 일본의 이런 흐름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한국에는 ‘20만 명의 소녀가 강제로 끌려가 성 노리개가 됐다가 대부분 학살됐다’는 거짓 담론이 웃자랐다.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양 극단의 이런 인식을 그대로 두고는 마땅한 해결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4월말 양국 지식인 모임인 ‘동아시아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울에서 ‘위안부 문제, 제3의 목소리’라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들의 목소리가 현재의 양 극단을 지양할 대안적 인식을 싹 틔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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