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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4월 17일] 아일랜드의 용서

입력
2014.04.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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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민속음악 '대니 보이(Danny Boy)'에는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그리는 부모의 애끊는 정이 절절하다. 800년 동안 영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해 온 아일랜드인은 하프의 애절한 선율에 맞춰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로 점철된 조국의 비극을 되새긴다.

■ 12세기 영국의 속국이 된 아일랜드는 1801년 영국에 합병됐다. 1916년 아일랜드가 독립을 선언하고 3년 뒤 대영투쟁은 들불처럼 번졌다. 민족무장단체 아일랜드공화군(IRA)이 발족한 게 이즈음이다. 1921년 휴전할 때까지 양측에서 1,400명 이상이 희생됐다. 이 때 남쪽 26개주(州)가 독립을 쟁취했지만 북부 6개주는 여전히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남았다. IRA의 주도로 투쟁이 극렬해진 1970년대부터 2007년 '세인트앤드루스 협정'으로 독립투쟁이 공식 종료될 때까지 다시 3,500명 가까이가 목숨을 잃었다.

■ 식민통치 시절 아일랜드가 받았던 박해와 수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수탈로 대기근이 발생, 800만 인구 중 200만명이 굶어 죽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가족과 생이별을 하며 이민선을 탄 사람도 200만명에 달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를 찾아 대기근을 사과한 게 150년 뒤다. 독립 후인 1950~60년대까지 영국 상점에는 '아일랜드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내걸릴 정도였다.

■ 마이클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이 며칠 전 영국을 처음 국빈방문,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역사적인 화해의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IRA가 여왕의 사촌을 암살했을 때 사령관이었던 북아일랜드 수석장관도 함께 했다.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런던데리는 아일랜드의 영혼을 노래한 '대니 보이'의 발원지였지만 지금은 영국 땅이다. 이런 아픔 속에서 이끌어낸 둘의 화해가 더욱 아름답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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