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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목마른 우리… 고립된 우주인과 다를 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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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목마른 우리… 고립된 우주인과 다를 바 있을까

입력
2014.04.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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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기만 한 밤하늘. 금세 눈 위로 쏟아질 듯 영롱한 별들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하지만 그 별들을 품은 우주는 인간이 한시도 방향감각을 유지하며 서 있을 수 없는, 지옥과 다름없는 공간이다. 더구나 공기와 물과 같은 매질이 없어 정상적인 소통도 불가능하다. 의사를 나눌 수도 발을 딛고 멈출 수도 없는, 그래서 머물 곳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갈수록 소외되고 유기되는 삶에 갇힌 개인은 각자의 성채를 쌓고 그 안에서 대답 없는 고함만 질러댈 뿐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메시지만 혼재한 세상. 영국 현대극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1999년 작품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옛 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처럼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분위기를 고립된 우주인들과 지구 곳곳에서 끝없이 '연결'하려는 이들의 일상을 통해 그려낸 수작이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이 16일부터 5월 11일까지 이상우 연출ㆍ번역으로 국내 초연하는 이 작품은 28자에 달하는 긴 제목(원제: the cosmonaut's last message to the woman he once loved in the former Soviet Union)에서 풍기듯 복잡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원작자는 현대인의 정체성 상실과 접속 실패를 관객에게 극명한 충격으로 전해주려고 일부러 13개 배역을 1인 2역으로 설정하도록 했으며, 130여분의 공연시간 동안 전 세계 16개 장소를 42개 장면으로 표현하는 매우 영화적인 연출을 주문했다.

이상우 연출이 무대화한 '한때 사랑했던…'은 한시도 눈 뗄 수 없는 화려한 우주와 밤하늘의 영상을 배경화면이 아닌 입체적인 무대미술로 구현해냈고 덕분에 극이 진행되는 동안 원 없이 별빛을 감상할 수 있다. 연극은 1980년대 우주로 쏘아 올려진 채 버려진 우주선에서 14년 동안 들어줄 이 없는 항해일지를 적으며 지구의 딸을 그리워하는 러시아의 두 우주인(이창수, 홍진일), 그리고 역시 '소통장애'를 겪는 이언과 비비안 부부(최덕문, 김소진)의 소멸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또한 서로 인간적인 관계가 없고, 존재위치가 매우 다른 등장인물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모습(뇌졸중 환자, 런던을 지옥이라 말하는 러시아 이민자출신 여성)을 거듭 그려낸다. 이러한 배역들을 1인 2역으로 배치한 덕분에 현대인의 사회적 분열 또한 극은 어렵지 않게 담아낸다. 연극에는 또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하는 '비공간(non-place)'들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배역들은 비공간의 대표격인 공항 터미널, 호텔방, 건물의 옥상, 카페 등에서 그나마 소통의 숨통을 틔운다.

막이 내려가기까지 관객은 반짝이는 우주영상과 아름다운 별빛에 취해 자칫 연출이 숨겨놓은 소외와 상실의 은유를 모두 놓치기 십상이다. 끝없이 부유하는 등장인물들, 서툰 외국어 실력과 언어장애가 오히려 소통을 가능케 하는 아이러니, 그리고 '대화'를 하려다 칼을 맞은 경찰 등 은유가 가득하다. 파편처럼 흩어졌던 인물들의 관계가 조금씩 한 덩어리로 보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게 이 연극의 흠이다. 극장에 들어서기 전 연극이 말하려는 주제가 '소통부재'라는 정도만 파악해도 훨씬 큰 그림이 보일 것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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