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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행복한 취업, 창직

입력
2014.04.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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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현재 55만 명인 대학 입학정원을 10년 안에 40만 명으로 줄이는 계획을 세웠다. 출산율 감소로 대학갈 인구가 급속히 줄어드니 당연한 계획이다. 그러나 30%에 가까운 정원 감축은 곧 대학 재정의 감소를, 경쟁력 약한 대학의 퇴출을 의미한다. 정원 감축 폭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지수는 바로 취업률이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 될 생각해야) 등 신조어가 난무하는 시대답게, '취업률을 높여야 대학이 산다'는 구호는 대학의 생존을 좌우하는 절대절명의 가치가 되었다. 대학은 취직 학원이 아니라, 순수한 진리 탐구의 상아탑이라는 주장은 이제 교수도 학생도 믿지 않는 낡은 패러다임이 되었다.

예술가를 양성하는 예술학교에도 취업률의 잣대를 들이댄다. 한때는 한예종의 낮은 취업률을 따지는 국회의 질의에 "독립 예술가 배출이 목표이기에 취업률은 낮을수록 성공한 것이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예술가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취업이 없으면 실업도 없고, 최소한의 실업 수당도 받을 수 없다. 다행히 '최고은 법'을 만들어 독립 예술가의 최소 생계를 지원하는 제도가 이제 작동하지만, 예술의 목표는 창작이지 생존은 아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건축과를 졸업하면 대학원이나 설계사무소, 시공회사 중 한 곳에 취업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취업이 쉽기도 했지만, 다른 길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형 건설 회사들도 무너지는 판이니 설계사무소도 어렵고, 교수 될 확률은 희박해 대학원도 마땅치 않다. 그러나 씩씩한 제자들은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듯 취업만 준비하는 졸업생)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디자인사무소를 차리고 대표가 되기도 한다. '취업'을 거부하고 '창업'을 택한 것이다. 이런 창업 열풍은 모든 문화 예술계에 확산되고 있다. 학교에 있는 '취업 진로센터'도 '창업 지원센터'로 기능을 확대 중이다.

디자인사무소를 열었다고 20대 풋내기들에게 비싼 설계 일을 맡길 만큼 우리 사회는 순진하지 않다. 젊은 건축가들은 일의 종류를 고를 만큼 여유가 없다. 설계뿐 아니라 인테리어, 시공, 사업기획, 저술, 시각 디자인 등 가리지 않고 일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무소 이름을 '모든 디자인연구소'로 짓기도 했다. 또 다른 제자는 사무실 공간을 주말이나 오전에 지역민들에게 시간제 임대하기도 한다. 비싼 임대료를 줄이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럼으로써 지역 공동체 문화에 기여하려는 의도도 있다. 과거에는 없었던, 상상도 안 했던 이들의 활동은 창업의 차원을 넘어서 '창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비 사돈댁과 갑작스레 결정한 딸아이의 혼사가 한 달 앞이어서 집안이 모두 결혼 준비로 긴장했다. 사성과 연길, 예단과 예물, 청첩, 촬영, 예복과 화장, 결혼식장, 폐백과 이바지 등 준비할 과정과 항목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이 많은 일을 어찌 다하나 걱정했더니, 엄청난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동원해 척척 해결해주는 이가 있단다. 이름 하여 '웨딩플래너'. 유능한 웨딩플래너를 정하는 것이 혼사의 핵심이 되었다. 딸아이는 연애결혼이어서 필요 없지만, 원하는 결혼 상대자를 골라주고 맺어주는 '커플매니저'라는 직업도 있다. 과거에는 중매쟁이나 집안 어른들이 하던 일을 체계화시켜 '창직'한 새로운 직업들이다. 그뿐만 아니다. 예식을 지휘하는 웨딩코디네이터, 식장을 장식하는 웨딩플로리스트, 전문 촬영가인 웨딩비디오작가 등 더욱 전문화된 직종들이 무수하다. 웨딩산업만 하더라도 창직의 영역은 무한하다.

기성세대가 오로지 경제적 목적만을 위해 꿈도 접고 일생을 희생했다면, 앞으로의 세대는 직업을 통해 자신의 꿈과 경제적 이득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그런 직업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단순히 잘사는 세대가 아니라 행복한 세대가 되어야 한다. 창직이야 말로 이른바 '창조경제'를 이루는 힘이 아닐까.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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