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벼랑인 옥상, 그 숨통마저 조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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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벼랑인 옥상, 그 숨통마저 조일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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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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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은 벼랑이다. 더 이상 평지에 머물 수 없는 사람들, 일상적인 곳에서 말 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배수의 진을 이룬 채 외치는 공간이다. 하지만 각박한 세상은, 옥상이 건물의 잉여라는 이유로, 그곳에 겨우 몸을 의지하고 작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마저 잉여로 취급하며 귀를 막는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설 자리를 잃었던 노동자들이 하나 둘 옥상으로 모였고 그곳에서 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사냥'됐다. 2009년 1월 19일 서울 용산의 작은 상가 남일당 옥상에서 목숨을 내준 이들, 같은 해 7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반대해 평택공장 옥상에 올랐다 곤봉 세례를 받은 이들이 그랬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줄지어 크레인, 망루, 송전탑 꼭대기 등 여러 '옥상'에 올라 생명을 걸어야 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말할 때 옥상을 논외로 할 수 없는 이유다.

옥상은 그래서 투쟁의 장소이자, 낡은 관계를 털고 새롭게 사유하는 공간이다. 이렇듯 옥상에 담긴 수많은 함의를 재해석하기 위해 국내와 일본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7명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5개 도시의 예술가 63명이 머리를 맞댔다. '옥상의 정치'라는 이름의 기획전시회와 글 모음 작업에 나선 것이다.

'옥상의 정치' 프로젝트는 계간지 의 편집위원이자 부산 '공간 힘'의 큐레이터인 김만석씨가 지난해 말 동료 큐레이터 김효영씨, 작가 서평주씨와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시작됐다. "삶이 벼랑이라는 이야기를 담아보려 했어요. 마침 용산참사 5주년을 앞둬 시기적으로도 맞았어요. 용산참사는 우리사회 옥상의 대표적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절망에 머물고 싶지 않았죠. 옥상이 지닌 이미지를 넘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단 옥상의 정치적 의미를 표현한 미술전시를 시작하자고 했죠. 부산으로만 한정하기가 아쉬워 서울 등 다른 지역 예술가들을 모았어요. 소위 '옥상 네트워크'를 이어가자는 취지죠." (김효영)

이렇게 짜인 '옥상의 정치' 기획전의 각본은 1월 광주, 대구, 대전, 부산에서, 그리고 2월 서울에서 각각 준비 작업에 들어갔고 3월 14일부터 동시에 '무대화'했다. 작가 20여명이 서울 문래동 일대의 실제 옥상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는 등 퍼포먼스를 하고 이를 동영상과 사진으로 담아 전시(대안예술공간 이포ㆍ4월4일까지)하며, 대전 스페이스 씨에선 4월10일까지 옥상에 관한 작가들의 시를 읊어 이를 텍스트와 음성으로 전시하는 등 옥상 관련 이벤트를 이어간다. 이들 전시가 단발 행사로 끝나지는 않는다. 광주에선 관련 잡지 발간이 논의되고 있으며 서울, 대구에서는 상시적인 전시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옥상의 정치' 프로젝트는 옥상을 주제로 한 젊은 학자 7명의 시, 콩트, 정치평론, 대담으로 엮은 동명의 책 발행(21일 출판사 갈무리)을 통해 예술가의 영역을 넘어 인문학계 영토로 뻗고 있다. "1월에 각 지역 예술가들에게 옥상 프로젝트 관련 기획안을 돌리고 옥상이 갖는 여러 의미를 고민했었어요. 그 뒤 아시아, 미주 지역으로 기획전을 넓혀가기로 하고 계획을 짜다가 미술 언어만으론 부족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으로 확장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곧바로 조정환 갈무리 출판사 대표에게 '글을 담자'는 의견을 내고 필자들을 모았어요."(김만석)

이 책에서 문학평론가 임태훈은 옥상이 없는 비정형 건축물들, 대표적으로 최근 개관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이 도심 개발사업으로 인한 파국을 상징한다고 비판하며 고영란 일본 니혼대 문리학부 교수는 점차 망각되는 민주주의의 공간인 옥상을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일본 소설 언어를 실마리 삼아 고찰해낸다. 민중미술가 홍성담은 큐레이터 김종길의 글을 빌어 스스로 망루와 옥상이 됐던 예술가의 치열한 행보를 말한다.

한 발만 나아가면 죽음의 경계를 만나게 되는 삶의 임계인 옥상. 전시와 출판으로 구현된 이번 '옥상 프로젝트'에 대해 참가자들은 민주주의의 숨통으로 남아있는 옥상마저 사유화하고 통제하는 권력을 막기 위한 지식인들의 봉화가 올랐다고 입을 모은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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