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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순응, 바람길까지 세세하게… 한옥은 기술이 아닌 혼으로 짓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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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순응, 바람길까지 세세하게… 한옥은 기술이 아닌 혼으로 짓는 집"

입력
2014.03.0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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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림 한옥 더는 짓지마라"터 잡고 땅 파는 기초부터 오랜 경험 바탕 생생한 전달선조 지혜 깃든 구들과 처마, 현대 건축도 눈여겨봐야전통 건축, 혼신의 반세기백제무령왕릉 최초로 발견 '미쳐서 지은 절' 보탑사통일대탑만 꼬박 5년 걸려 "전통목탑 되살려 큰 영광"

"날강도 같은 집 짓지 마라. 보다 보다 못해서 썼다. 한옥 지을 때 이 책 펴 놓고 지으라고. 알아야 제대로 지을 게 아닌가."

(청아출판사 발행)을 쓴 김영일(72)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 책을 보고도 한옥을 대충 지었다간 경을 칠 것 같다.

그는 평생 한옥 짓고 문화재 수리하면서 살아온 고건축 전문가다. 건축시공 기사이자 문화재보수기술자다. 전통건축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49년째, 해방 후 최대 고고학 발굴로 꼽히는 백제 무령왕릉을 처음 발견했고,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의 양식을 되살린 통일대탑으로 유명한 충북 진천의 보탑사를 23년에 걸쳐 지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답게 내용이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터 잡고 땅 파는 것부터 마무리 공사까지 한옥을 '제대로' 지으려면 알아야 할 것들을 일러준다. 나무ㆍ돌ㆍ흙ㆍ기와 등 재료를 구하고 사용하는 법, 건축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와 해결 방안, 한옥을 구석구석 한옥답게 만드는 기법, 유지하고 관리하는 요령을 설명한다. 전문가들 보라고 쓴 게 아니다. 건축주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싶은 것들로 알기 쉽게 썼다.

그는 "한옥은 기술이 아니라 혼으로 짓는 집"이라고 강조한다. 핵심은 자연을 거스르지 말라는 것이다. "한옥은 본디 자연친화적이지만 지을 때 잘못하면 자연을 거역하는 집이 될 수 있다"며 "바람과 햇빛, 눈과 비 등 자연에 순응하고 화합하는 집이라야 튼튼하게 오래 가고 사람을 살리는 집이 된다"고 말한다. 예컨대 방과 건물의 위치나 크기를 정할 때는 집 안팎으로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나무 기둥 하나도 나무가 자랄 때 섰던 방향 그대로 위와 아래, 남쪽과 북쪽(양지와 음지) 방향을 맞춰 세워야 덜 트고 덜 갈라진다.

책에는 전문가나 장인들도 잘 모르거나 지나치기 쉬운 한옥 건축의 실전 노하우가 많다. 요즘 목조문화재마다 나무를 갉아먹는 흰개미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기둥 밑에 굽을 파고 숯가루와 소금을 넣어 방충을 했던 선조들의 지혜도 그 중 하나다.

한옥의 오래된 지혜를 현대건축에 적용하는 방안도 일부 언급한다. 한옥 처마는 그 아래에 공기주머니를 만들어 단열효과를 낸다, 이를 활용해 아파트 창문이나 방파제에 처마를 달면 에너지를 절약하고 파도에 모래가 쓸려 나가는 속도를 줄일 수 있을 거다, 윗목은 차고 아랫목은 뜨거운 한옥 구들은 공기 순환을 일으켜 몸에 좋다, 구들 효과가 나도록 보일러 배관을 윗목은 촘촘하게 아랫목은 성글게 하면 좋겠다…

보탑사는 그가 혼신을 다해서, '미쳐서' 지은 절이다. 1991년 봄 첫 삽을 뜬 이래 지난해까지 23년간 공사를 총지휘해 높이 42.37m의 통일대탑을 중심으로 여러 채의 부속 건물을 지었다. 한국 전통건축의 모든 것을 이 절에 담았다. 특히 통일대탑은 신라 황룡사 9층 목탑 양식을 근 1,400년 만에 재현한 것으로, 국내외를 통틀어 목탑 양식으로는 유일하게 내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건물이다. 겉보기에 3층, 실제로는 안에 숨어 있는 층을 합쳐 5층인 이 건물은 높이가 아파트 14층에 해당하지만 쇠못 하나 박지 않고 지었다. 통일대탑 짓는 데만 꼬박 5년이 걸렸다. 그는 "전승이 끊겼던 전통 목탑을 현대에 되살린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고 행복"이라며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무령왕릉을 발견한 건 1971년, 백제 고분 송산리 5호분과 6호분의 배수로 공사 현장감독으로 있을 때다. 땅을 파다가 강에서 나는 작은 조약돌이 눈에 띄었다. 강돌이 왜 산 속 흙에 섞여 있는지 이상했다. 강돌은 산 사람 집이 아닌 무덤에 쓰는 건데, 혹시 주변에 발굴 안 된 무덤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바로 알렸다. 당시 현장에 전화기가 없어서 공주 시내 다방까지 가야 했지만 덕분에 발굴이 시작됐다.

그가 인터뷰 말미에 팔뚝을 걷어 보이며 만져보라고 했다. 돌 같이 단단한 정도가 아니라 숫제 돌덩이여서 깜짝 놀랐다. 문화재 수리나 한옥 공사 현장을 지휘하다 보면 직접 나무나 돌을 나르며 힘 쓸 일이 생기는 까닭에 그리 됐다고 한다.

"치열하게 살았다. 하루에 산을 세 개씩 넘어 다니며 일했다. 산 속에서 여러 달씩 일하면서 이슬 맞고 내려오다 간첩으로 몰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인생 황혼기에 서서 내가 아는 것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있어서 나서기 어려웠지만, 이젠 내가 제일 연장자에 속하니 한 마디 해도 괜찮은 나이 아닌가. 아름다운 한옥 한 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떠나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책은 실용성 못지 않게 한옥과 전통문화에 대한 지은이의 자부심이 강하게 두드러진다. 그는 건축주가 간섭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돈을 깎으려 들면 일을 안 한다. 완벽하게 해낼 테니 믿고 맡기라는 뜻이다. 돈이 남으면 돌려주거나 필요한 공사를 더 해준다. 여러 대학에서 요청을 받아 강의를 하지만 강의료는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도 고마워서"다. 이래저래 참 고집스런 사람 같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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