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세워진 친서방 과도정부에 대해 친러시아계인 동남부 지역에서 반대 시위가 확산되는 등 내부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과도정부를 인정하는 미국과 이를 부정하는 러시아 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는 와중, 러시아 의회 대표단은 크림반도를 찾아가 이 지역 병합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친서방 과도정부 반대 시위 확산
러시아 국영 이타르타스통신은 24일(현지시간) 친러시아 정서가 짙은 우크라이나 동ㆍ남부에서 친서방 과도정부 반대 집회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반발이 일고 있는 곳은 러시아인이 절반을 차지하는 크림반도이다. 반도 남쪽 세바스토폴에선 러시아계 주민 수 만명이 러시아 국기와 해군기를 들고 시내 광장에 모여 "키예프의 테러 분자들이 장악한 의회 결정은 합법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역 세금의 키예프 이송을 중단키로 하고 지역 경찰 지휘권의 시 정부 위임을 결의했다. 크림반도 동쪽 항구 도시 케르치의 러시아계 주민 수 천명도 시 청사에 걸린 우크라이나 국기 대신 러시아 국기를 게양하고 중앙의회의 권력 장악에 반대했다. 흑해 연안 오데사의 주민 2,000명은 러시아 국기를 들고 나와 '마이단(야권 시위대가 점령한 독립광장)은 물러가라', '우리는 유럽연합(EU)의 밥이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러시아 의회 대표단은 25일 크림반도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정국에 우려를 표하며, 크림 주민들의 투표나 지역 의회 결정으로 크림을 러시아에 병합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러시아가 이를 신속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향후 우크라이나 정국 추이에 따라 국가 분열을 맞을 경우 러시아가 크림반도 병합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대립각 세운 미국과 러시아
미국은 도피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실각을 공식 확인하며 과도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이끌지 않고 있다"며 "연정을 구성해 조기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투르치노프 임시정부를 승인하느냐'는 질문엔 "미국은 우크라이나 의회가 합법적으로 새로운 의장을 선출하는 과정을 지켜봤고, 정국을 통제하고 정부기관들이 제 기능을 하도록 이끄는 노력을 지지한다"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를 부정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24일 현지언론과 인터뷰에서 "AK소총을 든 우크라이나 반군과 협상할 수 없다"며 "새로운 권력을 대화 상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작동하는 우크라이나 권력의 정통성은 상당히 의문스럽다"며 "일부 서방 국가가 우크라이나의 새 권력을 받아들인 건 실수"라고 비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언급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야누코비치 행방 오리무중
실각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요트 도피설과 러시아 흑해함대 은신설 등이 불거져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개인 요트를 타고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갔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24일 보도했다. 21일 전세기로 도주하려다 국경수비대의 저지로 발이 묶인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크림반도 남부 발라클라바에서 개인 요트를 타고 도피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에도 여러 차례 요트를 타고 이 곳을 찾았던 데다 요트 정박 시설 중 한 곳이 야누코비치 대통령 아들과 밀접한 회사 소유라고 해 요트 도피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한 항구 보안 관계자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타고 왔던 차량을 보지 못했다"며 부인했다.
우크라이나 TV방송 ATR은 자체 소식통을 인용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세바스토폴항의 러시아 흑해함대 기지에 도피해 있고, 여기서 선박을 이용해 러시아로 망명을 시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군사 소식통은 "흑해함대 군함이나 다른 시설에 야누코비치는 없다"고 반박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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