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이 2일 오후 4시 한국일보사 편집국에서 열렸다. 문학평론가 심진경(45), 백지연(43), 신형철(37)씨가 심사를 맡은 올해 예심에서는 총 10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장편으로는 구병모의 와 이현수의 , 단편은 김연수의 '벚꽃새해', 김이설의 '한파특보', 손보미의 '산책', 윤대녕의 '반달', 윤이형의 '쿤의 여행', 이기호의 '화라지송침', 전성태의 '성묘', 조경란의 '밤을 기다리는 사람에게'(가나다 순)이다. 장편과 단편, 신인과 중진을 가리지 않고 한 해 씌어진 최고의 작품에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던 한국일보문학상은 반세기에 걸쳐 좋은 작품들을 재빠르게 알아보고 격려함으로써 문단의 경향을 선도해왔을 뿐 아니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로 작가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문학상으로 꼽혀왔다.
심사는 2012년 10월부터 2013년 9월 사이 국내에서 발행된 장편소설 44편과 15개 주요문예지에 발표된 중ㆍ단편소설 271편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 중 장편은 본심에 오른 전체 10편 중 2편뿐으로, 한국소설의 주요 성취가 여전히 단편 쪽에 기울어있음을 증빙했다.
"아쉽다! 장편소설"
과거에 비해 많은 장편소설이 발표됐지만, 눈에 띄는 작품은 드물었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최근 수년간 장편소설을 장려해온 문학계 안팎의 분위기로 문예지와 출판사 웹진 등의 연재 시스템이 확대, 생산량 자체는 증가했으나, 예전처럼 주제적 새로움이나 실험적인 시도가 뚜렷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상황 자체가 긴 호흡으로 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어려운 구조이기는 하지만, 세태일상을 다룬 소소한 작품들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평가다.
신형철 예심위원은 "300~400쪽짜리 장편소설이 20쪽짜리 단편소설보다도 문제의식이 없고 정서적 울림도 약한 경우가 많았다"며 "책을 읽는 독자의 하루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제를 끝장까지 파고들어가는 사유의 야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편이 대중화하는 것도 중요한 경향으로 언급됐다. 심진경 예심위원은 "출판시장 규모가 줄어든 상황에서 장편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다 보니 작가도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실험적인 작품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쓴 소설은 아니지만,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품을 쓸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올해 본격문학 작품 중 유독 연쇄살인범 같은 장르소설의 소재와 문법을 차용한 소설들이 많았던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백지연 예심위원은 "최근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가독성을 위시해 대중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것이 상업성과 결부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장편소설이 소통에 대한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인 만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현재는 장편소설의 과도기"라며 "추리물이나 스릴러, 재난서사 등 대중문화의 서사가 소위 말하는 제도권 문학에 자극을 줘 다양하게 섞이고 있는 상태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젊은 작가들의 부진… 90년대의 귀환
올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작들의 특징은 1990년대부터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해온 중진작가들의 작품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일보문학상뿐 아니라 앞서 심사를 실시한 다른 문학상에서도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문학적 경력에 이정표를 세울 만한 단계의 젊은 작가들이 이렇다 할 문학상을 받지 못한 채 중진작가들의 수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가히 '90년대의 귀환'이라 할 만하다. 올해 동인문학상이 이승우의 에, 황순원문학상이 하성란의 '카레 온 더 보더'에 돌아갔으며,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도 윤대녕, 조경란 등의 중진작가들이 포진해 있다.
특히 단편소설에서 이 같은 추세가 두드러졌다. 중진작가들이 과거 구축한 자기 문학의 세계 안에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야 할 젊은 작가들은 야심찬 양식적 시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진지한 태도로 자기 스타일을 만들고 변주하는 작가", "전작들보다 더 깊어지려는 노력으로 시대를 증언한 작가", "장르적 상상력을 인간에 대한 탐구로 성공적으로 확대한 작가", "한국소설의 가장 새로운 경향이자 스타일","어떤 소재를 쓰든 한국 소설 최고의 기량으로 독자를 감응케 하는 작가" 들이 있었다. 한 해 동안 한국소설을 읽는 보람을 안겨준 보석 같은 작가들이자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들이다. 어떤 작가가 어떤 작품으로 보석처럼 빛났는지, 6일부터 이어지는 후보작 릴레이 지상중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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