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남북관계의 발전이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럽 순방을 앞두고 프랑스 일간지와 한 회견에서다. 지난 5월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지금 당장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한 것이나, 6월 개성공단 정상화를 앞두고 “아직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한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마침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천안함 사태 이후 정부가 취한 ‘5ㆍ24 조치’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다”고 해 대북정책 기조에 대한 변화 여지를 띄운 상태다.
박 대통령이 원론적이나마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한 것은 여러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본다. 개성공단 발전적 정상화의 핵심이 국제화인데 5ㆍ24 조치에 막혀 아무런 진전이 없고, 남북 및 러시아의 철도가스관 연결사업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 사업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주변 4강으로는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12일) 의제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대북 패러다임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역시 지지부진한 남북관계로 인해 이전 정권의 ‘비핵ㆍ개방ㆍ3000’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 개방적인 자세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상 간의 대화가 정치환경을 크게 바꿀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만큼 신중해야 한다. 지금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영변 핵시설 재가동 얘기가 나오고, 중단된 6자회담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자칫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꽉 막힌 국내 정국상황을 덮을 요량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했다면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상회담은 우리의 대북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관광 재개, 개성공단 발전, 핵문제 등 정상회담 전에 신뢰를 쌓아야 할 남북 간 현안이 산적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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