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로 들어서자마자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2기 7차 회의를 열어 대표적 경제통인 박봉주 당경공업부장을 내각총리로 임명했다. 하루 앞서 열린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박봉주를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함으로써 그의 내각총리 복귀를 예고하였다. 박봉주 내각총리는 2002년 소위 '7ㆍ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새로운 경제정책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2003년 내각총리에 임명됐지만 당과 군부의 견제로 2007년 해임되었다. 그리고 3년 가까운 시간을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의 지배인으로 좌천되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2010년 이후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여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키는 전략을 채택하고, 경제사령탑으로 개혁파 박봉주의 재기용을 통해 남한과 국제사회에 대해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발사에 이어 3차 핵실험에 이르기까지의 핵자주권 확보 과정을 통해 북한의 최고 통치자로서 김정은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다시 경제건설에 총력을 경주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김정은 체제는 출범 후 일관되게 '인민생활 향상'을 당면과제로 내세워 왔다. 아울러 선군정치에 기초한 경제정책을 일부 수정하여 당중심의 당-정-군의 역할 분담체제로 변경을 시도하고 '6ㆍ28 방침'이라는 새로운 경제관리 조치를 시범적으로 실시해 왔다.
북한의 경제건설 노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폐쇄적 자주노선으로는 불가능하며 외부로 부터의 지원과 투자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미관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 2002년 10월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남한을 방문했던 박봉주 내각총리나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은 누구보다 그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아직 한미 합동군사연습인 독수리훈련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서둘러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하였음을 공식화했다. 이는 국제사회에 대해 대북정책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추가 핵실험 중단과 경제지원을 의제로 한 협상을 요구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여하간 주변 각국의 지도부가 교체된 이후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관련국 모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또 다시 의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는 분명 이명박 대통령과는 차이가 있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핵문제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접근해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은 북한 정권의 종말을 가져오지도, 북한 경제를 더 어렵게 하는데도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북핵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스스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많은 국민들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 비단 우리 국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북한도, 미국도, 중국도 알고 싶어 한다. 남북간에 대화를 재개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고 나아가 한미중 3국이 협력하여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북핵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틀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우리가 주도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면밀한 이행전략을 마련하고 5월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대북정책이 '압력 가하기' 일변도에서 '끌고 가기'로 전환되기를 기대한다. 박봉주를 내각총리로 기용하고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북한의 정책노선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이봉조 극동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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