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잇따른 장ㆍ차관 낙마 사태로 확인된 인사실패와 관련,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했다. 허태열 비서실장은 그제 김행 대변인이 대독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국민에 심려를 끼친 데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의 질타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에 떠밀린 끝에 나온 사과라지만, 도무지 진솔한 자세를 엿보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에 나서지 않았다고 꼬투리를 잡는 게 아니다. 직접 사과할 것인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박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과 판단에 달렸다. 인사위원장이기도 한 허 비서실장에게 얼마든지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넘겨 받은 사과를 허 실장이 대변인이 대신 읽도록 다시 넘긴 어색한 모양새는 사과의 의미를 크게 줄였다. 국민의 눈길을 '2중 위임'행태로 사로잡아 국민과 대통령의 사이를 크게 벌여놓고서 어떻게 대통령의 뜻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그제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의 발상과 행태를 잇따라 비판한 게 우연이 아니다. 정부의 온전한 출범이 많이 늦어져 아직 확고한 틀을 갖출 시간 여유가 없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미 인사의 핵심 잣대로 언급한 '국정철학'의 내용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대통령이 언급한 단어와 일화로 채우고, '창조경제'의 구체적 내용을 여당 의원들에게도 납득시키지 못한 것은 시간 여유가 짧다는 이유로 덮기는 어렵다.
두 사건은 청와대 조직이 시대착오적 운영원리에 젖어있는 게 더욱 근본적 문제일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다.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에서 비롯한, 상대적인 대통령의 권위를 절대화한 것은 아닌지, 국민과의 소통을 매개ㆍ증폭하는 대신 차단ㆍ감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비서실상이 사과문을 대변인에 읽도록 하고, 대통령 어록을 교조적으로 되뇔 수 있을까. 첫 고위 당정청 워크숍의 유일한 성과가 '상호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에 공감한 정도라면 국민과의 소통 수준은 말할 나위도 없다.
청와대 조직에 민주적 분위기가 살아나야 하며, 이는 적극적 국민 소통과 마찬가지로 결국 박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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