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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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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

입력
2013.02.1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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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이 코앞이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다.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 같지만 의외로 박 당선인이 여성이라는 점은 특별히 부각되지 않았기에 하는 말이다. 여야 맞대결 구도가 워낙 극명해서 ‘남성 대 여성’ 대결 구도가 빛이 바랬다. 과거 같으면 “여자가 무슨”하는 반응을 보였을 만한 고령자들까지 제약할 정도로 정치대결 구도가 강했다. 여성의 지위와 발언권이 자란 결과 여당이 ‘여성의 힘’을 ‘행복’이나 ‘변화’와 연관해 내세울 수는 있었어도 야당은 ‘여성’을 꼬투리로 잡아 보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여성과 남성은 다르다. 성장 배경과 교육, 각자의 노력에 따라 드러내는 태도는 엇비슷하게 조정할 수 있어도, 타고난 인식과 감각의 차이까지 지우기는 어렵다. 남녀 차이의 언급만으로 곧바로 남성 우월주의의 발로로 비칠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한국사회에도 차이와 차별을 구분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남녀 차이에 대한 과학적 담론이 부쩍 무성해진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뇌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한 인지ㆍ감각의 이질성이다. 좌우 반구로 갈라진 대뇌의 왼쪽에 ‘브로카(Paul Broca) 영역’이나 베르니케(Carl Wernicke) 영역’같은 언어 중추, 우뇌에는 공간지각 중추가 자리잡고 있는데 남녀별로 그 활성화 정도가 크게 다르다. 또 남자가 여자보다 뇌는 커도, 좌우의 정보통신망인 신경다발(뇌량ㆍ腦梁)이 여성처럼 촘촘하게 발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여성의 뇌는 좌우를 따로 또는 함께 쓸 수 있지만 남성은 좌우 한쪽에 특정 정보처리를 집중시킨다고 한다. 여성의 뇌는 ‘듀얼 프로세싱’ 기능이 탑재된 컴퓨터인 셈이다. 그런 차이의 좋은 예가 언어 능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청각기능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양쪽 귀에 다른 소리를 들려 주어도 둘 다 잡아내지만,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한 대다수 남성은 불가능하다. 태아의 정소(精巢)에서 다량 분비되는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이 이런 태생적 차이를 부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남녀의 분명한 차이는 사회적으로도 점차 널리 인정되고 있다. 국내는 아직 머뭇거리고 있지만, 구미에서는 위법성 조각 사유의 하나인 정당방위의 요건을 여성에 대해서는 완화해 그 인정 폭을 넓히는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한다. 미국에서 남편의 지독한 음주 폭행에 시달리던 아내가 곯아떨어진 남편을 총으로 쏘아 살해하고도 정당방위가 인정됐다는 외신을 옮긴 게 벌써 20년쯤 전이다. 부당한 위협이나 침해와 그에 항거하는 방위행위가 시간적으로 바짝 붙어 있어야 한다는 ‘현재성’ 요건을 누그러뜨린 결과다. 여성은 위협과 침해에 대한 공포가 남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 ‘현재성’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 그런 법적 판단의 주된 논거였다. 이처럼 성별에 따른 인식ㆍ감각의 차이를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설사 정당방위를 인정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극도의 공포에 따른 책임능력의 한계를 이유로 처벌 조각 사유로 삼을 수 있다.

10여 년 전 도쿄에서 잡아본 섬섬옥수도 그랬지만, 최근의 인사 지연에 비추어 봐도 박 당선인은 천생 여성이다. 얼굴 상처를 누르고 “대전은요?”하던 담대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거꾸로 위기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에 따른 판단과 행동의 지연이 두드러진다. 여성이 느끼는 공포의 정도나 지속력이 남성보다 큰 것은 사상(事象)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정서적 공명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예술적ㆍ종교적 감흥도 다르지 않다.

남성 특유의 공격성이나 폭력성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그가 대통령인 5년은 갈등과 대결 대신 화해와 평화를 기대할 만하다. 다만 작은 위기도 커다란 정서적 동요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고 신속한 위기대응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섣부르다. 남은 내각과 청와대 인선을 통해 남성성이 강한 인재를 가까이에 두어야만 내려놓을 수 있을 듯한 우려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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