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출세의 사다리' 출간 한영우 교수 "개천에서 용 났던 과거제도의 전통이 오늘날 역동적 한국사회 만든 토대"

조선시대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역동적인 시대였다. 조선사(朝鮮史) 전문가인 한영우(74)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전체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후 내린 결론이다. 그는 최근 펴낸 '과거,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에서 조선시대에 양반 신분이 세습됐다는 기존 학계의 통념에 이의를 제기했다.

1997년 '조선시대 신분사 연구'를 펴내기도 했던 그는 "조선을 이끌어 간 정치엘리트인 문과급제자에 대한 연구는 구체적인 통계 수치가 없거나 근거가 빈약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어서 조선사회가 지닌 신분적 개방성을 크게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번 책에서 조선 500년에 걸쳐 배출된 문과급제자 1만4,615명 전원의 신분을 조사해 왕대(王代)별 급제자 수와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 등 구체적인 통계 수치를 제시했다. 자료 조사와 집필에만 5년이 걸렸다.

그는 과거 합격자 명단인 방목(榜目)은 물론, 급제자 집안의 족보, 실록에 기록된 급제자의 벼슬과 신분에 관한 자료 등을 일일이 찾아내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전원의 신분을 확인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 시대 양반의 신분과 특권이 세습됐다는 기존 학계의 통념과는 달리 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도 과거에 대거 합격했다.

조선 초기와 중기의 경우 평민 등 신분이 낮은 급제자가 전체 급제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태조~정종(40%), 태종(50%), 세종(33%), 문종~단종(34%), 세조(30%), 예종~성종(22%), 연산군(17%), 중종(20%), 명종(19%), 선조(16%) 등이었다. 하지만 인조이후에는 숙종(20%), 경종(34%), 영조(37%), 정조(53%) 고종(58%)까지 올라갔다. 특히 이 가운데에는 영의정의 자리에 오른 사람도 있고 판서가 된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조선 중기 양반가문 출신들 위주로 높은 벼슬을 차지했다는 실학자들의 지적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조선 전체로 볼 때는 범죄인과 노비만 과거에 응시하지 못했을 뿐 서얼(첩의 자식) 출신 과거 급제자도 많았습니다."

그는"공부를 잘하면 출세하는 과거 제도의 전통이 오늘날 역동적인 한국 사회를 만든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1권 '태조-선조'편을 펴낸 한 교수는 2권 '광해군-영조' 편, 3권 '정조-철종' 편, 4권 '고종'편을 차례로 발간할 계획이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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