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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 조선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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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 조선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다

입력
2012.11.2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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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불과 20일도 걸리지 않아 한양을 점령했다. 벼락 같은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총알이 날아오는 통에 조선의 주력무기였던 창, 활은 무력화됐다. 이 신무기는 날아가는 새도 맞춘다고 조총(鳥銃)이라 불렸다. 22일 밤 10시 KBS 1TV '역사스페셜' 한국의 무(武) 2부는 조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임진왜란을 거쳐 동아시아 최고의 조총 부대로 이름을 떨치기까지 조총이 몰고 온 조선의 군사 체제와 사회 변화를 조명한다.

임진왜란 초기 수세에 몰린 선조는 조총부대 확보를 지상 과제로 삼았다. 1년도 안 돼 조총 생산에 들어갔고 훈련도감을 세워 조총병 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활을 쏘는 기병 중심이던 조선의 군사 체제는 포수 중심으로 변화했다. 과거 시험에도 조총 사격술을 포함시켰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조선에 또 한 번의 피바람이 불었다. 조총을 앞세웠던 왜군과 달리 기병을 앞세운 여진족의 공격에 조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1637년 1월 남한산성이 청 태종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평안병사 유림 장군은 조총의 특성과 지형을 이용해 청군을 격파했다. 이 전쟁에서 조선 조총군은 청의 장군 양구리를 사살하기도 했다. 청나라가 벌인 많은 전쟁 중 이렇게 높은 관직에 있는 장군이 죽은 것은 병자호란이 유일하다.

조선의 뛰어난 조총 사격술을 잘 알고 있던 청 태종은 1658년 러시아가 나선정벌로 흑룡강성까지 영토를 확장하자 조선에 조총부대 파병을 요구했다. 신유 장군과 200여명의 조총군은 러시아 선적 11대 중 7척을 격파하고 러시아군 대장을 사살해 조청 연합군의 완승을 이끌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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