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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착 도와요" 베트남인의 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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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착 도와요" 베트남인의 대모

입력
2012.11.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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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 국제대학교 관광경영계열의 전정숙(38ㆍ여ㆍ본명 전티튀)교수는 베트남 이민자들의 대모로 통한다. 통역, 상담으로만 하루 4,5시간은 전화를 붙잡고 산다. 베트남 결혼이민자 출신 첫 대학교수라는 명함이 어색할 정도로 그의 일과는 상담원과 다를 바 없다. 전 교수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2002년.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갔다 온 친구 소개로 남편(49)을 만나 결혼한 뒤 곧바로 입국했다. 그는 당시 베트남 광닌성의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한글을 배우기 위해 수소문해봤지만 당시만 해도 다문화센터 등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거의 없던 때였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 공부를 하면서 한글을 배웠고 미용사, 재단사 자격증도 땄다.

평범하게 살던 그의 인생은 2005년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인해 바뀌게 됐다. 경기 안성경찰서에서 그가 러시아어 통역이 가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통역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는 "러시아어는 조금밖에 못하고 베트남어나 영어 통역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이후 경찰서에 그의 이름이 등록됐고 그는 통역을 위해 경찰, 검찰, 법원 등지로 수시로 불려 다녔다.

전 교수는 그때 한국법을 몰라 피해를 보는 베트남 동포들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했다. 버려진 오토바이인 줄 알고 나사를 하나 풀었다가 절도죄로 잡힌 청년, 이혼이 두려워 매맞으면서도 참는 부인, 악덕 기업주에 돈을 뜯긴 노동자 등 안타까운 사연투성이였다. 어차피 돈으로 도울 수는 없으니 머리로 돕겠다는 각오였다.

그는 평택대학원에서 다문화 출신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응모했으나 자격이 안돼 불합격 처리됐다. 당시 그는 면접관 앞에서 "동포를 도울 수 있게 공부하게 해달라"고 울면서 사정했으나 3년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를 눈 여겨 본 면접관은 편입을 알선했고 2008년 50% 장학금을 받고 디지털응용정보학과에 편입했다. 이 학교 다문화 출신 1호 편입이었다. 그는 이어 대학원에서 다문화가족복지를 전공한 뒤 올해 국제대에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전 교수는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안성다문화센터에서 상담, 통역 일을 시작했다"며 "나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상담, 통역 전화가 새벽 1,2시를 가리지 않고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도움이 필요한 동포가 많다는 얘기이다. 그의 남편도 이제 자다가 전화벨소리에 깨도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일 정도다. 그는 "주로 전화를 받는 편인데도 한 달 통화요금이 15만원이 넘는다"며 "도움을 준 뒤 '고맙다'고 인사를 받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현재 1,000여명의 동포를 자신의 컴퓨터 파일로 관리한다. 도움을 준 뒤 사후 결과까지 정리하고 있다. 얼마 전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돼 잃어버린 파일까지 합치면 그가 도움을 준 민원인은 3,000명이 넘을 정도이다.

그는 요즘 주말이면 집에서 한글강의도 하고 있다. 다문화센터나 대학 문화센터의 한글강의가 주로 평일 낮에 이뤄져 혜택을 보는 다문화 근로자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베사모(베트남을 사랑하는 모임) 총무를 맡고 있는 그는 동포를 체계적으로 돕기 위한 모임 결성도 준비 중이다. 그는 "베트남 출신은 이민역사가 일천해 중국, 몽골에 비해 교포사회가 빈약하다"며 "하지만 우리 아이가 '왕따'를 이겨낸 것처럼 동포들이 모든 걸 이겨내고 주류사회로 편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웃었다.

이범구기자 eb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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