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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보이는 사진과 말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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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보이는 사진과 말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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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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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임플란트 수술을 받을 때 기억이다. 치과의사가 아니니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수술을 받는 입장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인공 치아를 고정시키기 위해 작고 가는 금속 기둥을 잇몸에 삽입하는 단계였다. 마취를 해서 통증은 물론 아무런 감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각종 치과기구들이 내는 소음과 의사의 손동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때문에 온갖 무서운 상상에 시달려야 했다. 내 상상력은 실제로 보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더 활개를 치며 파괴적이고 기묘한 장면들을 머릿속에 끊임없이 쏟아냈던 것이다. 커다랗게 구멍이 나고, 여기저기로 튀고, 깊숙이 패여 들어가고, 잘게 갈리는 것들의 이미지를.

그때 내가 요즘처럼 최첨단 영상설비를 갖춘 치과 수술대에 누워 눈앞의 모니터로 수술 장면을 볼 수 있었다면 터무니없는 상상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 영상이미지가 사실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 정보만을 정확하게 전달해주었을 테니까. 애초 그 이미지는 기계장치의 엄격함과 단순성으로 렌즈에 비친 사건과 대상만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포착한 것이니, 거기에 쓸데없는 오해와 심리적 고통을 유발할 상상이 끼어들 여지는 없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의 상상력은 때로는 황당할 정도로 예측불가여서 예컨대 눈앞에 뻔히 제시된 사진 기록물 한 장에서도 가지각색의 억측과 다종다양한 억견을 파생시켜낼 수 있는 것이다. 그 한 장의 사진에 볼거리가 많은가 적은가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볼거리가 많으면 이것저것 뜯어가며 말로 살을 붙이고, 볼거리가 적으면 사진의 전과 후를 상상하며 해석의 나래를 편다. 이는 같은 영상이미지라 해도 특히 사진을 두고 강하게 발생하는 현상인데, 아무래도 동영상의 경우는 전체 맥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실 정황 정도는 대략 추려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시간의 찰나, 사건의 한 측면만을 쪼개 보여주는 사진에서는 역으로 우리의 공상이나 망상이 운신할 폭이 더 넓어진다. 최근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며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한 어린 여가수가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 중 한 명과 찍은 사진 한 장, 그리고 이를 기화로 소란스럽게 끓어오른 여론이 적나라한 사례일 것이다. 여가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실수로 잠시 잠깐 올린 그 사진은 IT 강국의 소셜 네트워크 파워를 독특한 곳에서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스캔들로 비화됐다. 네티즌들은 둘의 교제를 기정사실화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사진이 찍힌 일자부터 장소, 둘의 감정 상태 및 육체적 관계까지 유추에 유추를 거듭해 떠들어댔다. 드러난 이미지 상으로는 쉽게 보이지도 않고 결코 단언할 수도 없는 것들을 문자 그대로 사진을 쪼개고 쪼개 '증거'라며 생산해낸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기 좋아하는 논자들은 해당인의 인권이라든가 사생활 보호 같은 사안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또는 매스미디어와 연예오락산업과 대중여론이 불건강하게 결합할 때의 위험성을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더 주목하는 점은 언제부턴가 우리가 각종 사진과 동영상을 물리적인 폭력 대신 언어를 이용한 은밀하면서도 자극적인 폭력 행사의 수단으로 남용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나나 당신같이 평범한 우리가 유튜브나 인터넷 포털에 뜬 정체모를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순진하게도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댓글을 달고 있다. 갑자기 잊고 살던 양심과 측은지심을 발동해 타인에 대한 추문과 욕지거리와 비난을 쓰레기더미처럼 디지털 창에 쌓고 쌓는다. 첨단기술을 통해 더 많이 더 잘 보게 된 만큼, 더 미몽에 잠긴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게 된 이 역설 앞에서 구체적 누군가의 마음이 구멍 나고, 찢기고, 패이고, 갈려나가고 있다.

강수미 미술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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