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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점적인 길 찾기와 선적인 길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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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점적인 길 찾기와 선적인 길 찾기

입력
2012.11.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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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겪는 곤란한 문제들 중에는 장소에 대한 문제가 있다. 한국인과 약속 장소를 정할 때 꼭 겪는 모호함이다. "어디서 만날까요?", "안국역에서 봅시다." 그러면 당연히 이 외국인은 안국역이 어떤 특정한 지점 인 줄 안다. 그래서 수소문 해 보니 안국역은 적잖이 넓은 범위를 갖는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한다. "안국역 어디서 봅니까?" 그러면 이렇게 묻는다. "안국역 잘 모르시죠?" 당연히 모른다. "그럼, 안국역 2번 출구 쯤에서 보지요." 이번에는 2번 출구는 알겠는데, '쯤'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인터넷 지도에서 보니 2번 출구는 명확히 포스트에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있는 '여기'와 '안국역 2번 출구'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점과 점 일 뿐이다. 그 둘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외국인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리저리 지도를 살핀 끝에 안국역을 찾고, 거기서 다시 내가 있는 위치를 찾는다. 이 작업만 해도 벌써 몇 십분 째다. 한국에 가면 바가지를 쓰더라도 무조건 택시를 타야 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탄다. "어디 가시나요?" 택시 기사가 친절하게 묻는다. "안국역 2번 출구에 갑니다." 기사가 씩 웃는다. 보통 한국사람들은 안국역 2번 출구로 가주세요, 하거나 안국역이요, 라고 얘기한다. '~에 갑니다' 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분은 외국인! 정확히 안국역 2번 출구에 내려 드리기로 기사는 다짐한다. 가로를 이용해 특정한 지점을 찾는 외국인과 모호한 장소의 영역으로 목적을 정하는 한국인이 만나, 서로의 방법에 더 집착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기사는 생각한다. 2번 출구 앞에 내려 드리려면 출발한 곳이 안 좋다. 지금 이대로 가면 건너편 4번 출구가 순방향이다. 그러나 서울의 지리도 잘 모르는 외국인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내려 드릴 수는 없다. 민간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개인택시 기사로서 할 일이 아니다. 기사는 P턴에 골목을 돌고 돌아서 겨우 방향을 맞춘다. 그때 이 외국인은 지도에 나온 방향과는 다른 이상한 곡예를 하는 기사가 못 미덥다. 개인택시 기사는 한껏 친절을 베풀며 드디어 '2번출구'라고 씌인 기둥 앞에 정확히 택시를 멈췄다. 친절히 손님에게 확인 시키고 요금을 받았다. 이 외국인은 2번출구에 내려 만나기로 한 사람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다. 순간 당황한다. 자, 주머니 전화가 없던 시대다. 이 외국인은 안국역 2번 출구가 어디로 떠내려 갈까봐 기둥에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외국인은 여기까지오는 과정인 선을 잃어버렸으므로 더욱 더 모호한 장소인 점에 집착한다. 용기를 내 2번 출구 기둥에서 떨어져 나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는다. 맞단다. 안국역이 맞다는데 도무지 안국역 같지가 않다. 안국역은 안국역을 여기저기 관통하고 있는 도로의 이름과 무관하고, 안국역이라는 이름과 연관된 안국동이라는 지명은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지역이 정말 이 곳에 있는 건지도 의심스럽다. 이 외국인의 인식 속에서 안국역은 다른 무엇과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듯이 보인다. 안국동이라는 데라도 어디 보이면 좋겠는데,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서있는 곳이 안국동이라고 말한다. 여기도 안국동, 저기도 안국동이다. 심지어 상당한 거리를 벗어났는데도 거기가 안국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대체 안국동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안국동이 없는 상태에서 안국역 2번 출구는 있긴 한건가.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좀 과장했지만, 서양인들은 선적인 길찾기를 하고 한국인들은 점적인 길찾기를 한다. 가로 중심의 길찾기는 가로를 따라 대상이 순차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점적인 길찾기는 선적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옛말은 점적인 길찾기의 길없음, 즉 길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길이 될 수 있는 복잡한 체계에 대한 경고다. 우리에게 이런 지리관념은 지금도 뿌리 깊다. "홍대 앞에서 보자.", "응. 거기로 와." "전에 만났던 데서 보자." 도대체 홍대 정문은 어디고, 정문 앞은 어디를 말하는가? 거기는 또 어디인가? 암호인가? 전에는 어제인가, 한 달 전인가, 일 년 전인가? 이 모호한 경계를 타고 우리는 한치의 틀림도 없이 꼭 거기서 만난다. 오랜 씨족공동체 사회를 겪으면서 우리에게는 타인과의 유대가 강화 된 것이다. 이 오랜 유대를 깨고 가로중심의 선적인 길찾기가 도입됐다.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자못 궁금하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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