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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PD의 오디오 파일] 비지스의 '아이 스타티드 어 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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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PD의 오디오 파일] 비지스의 '아이 스타티드 어 조크'

입력
2012.05.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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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알고 좋아한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이토록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다만, 고등학교 수학여행 사진 한 장에서 나는 비지스를 만난다. 1980년 봄, 수학여행 학생들만 전문으로 받는 경북 경주의 어느 삭막한 여관 마당에서 격렬하게 춤추고 있는 나와 단짝 친구가 꽉차게 담겨 있는 사진. 친구와 나는 비지스의 ‘스테이 인 얼라이브’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나는 비지스 때문에 춤을 추게 되었다. 비지스의 풍성한 디스코 음악을 듣기 전에 나는 춤이란 걸 추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랬는데, 77년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에서 비지스의 디스코 음악을 듣는 순간, 내 몸이 음악에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나뿐은 아니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비지스의 디스코 음악에 빠르게 중독됐다. 비지스가 ‘트래저디’하고 외쳐대면 정말 엄청난 비극이 나를 덮쳐 왔다.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를 배경으로는 연애소설을 몇권이나 마음속에서 만들어 냈던가. 60년대에 이미 ‘돈 퍼겟 투 리멤버’등의 초히트곡을 갖고 있는 그들은 사실 내 윗세대의 가수였다. 그래도 나는 비지스가 좋았다. 나의 올드한 취향일 수도 있다. 친구들이 정윤희 좋아할 때 나혼자 한참 엄마 역할을 하는 김지미를 좋아했고 듀란듀란, 숀케시디, 레이프가렛에 소녀들이 열광할 때도 나는 이미 아저씨인 비지스를 좋아했다.

하지만 비지스는 나와 살짝살짝 시기가 어긋났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비지스는 디스코 전성기를 이미 지나쳤기 때문에 2,000원짜리 종로의 디스코텍에서도 그들의 음악은 들을 수 없었다. 세상은 ‘이럽션’이나 ‘퀸시 존스’의 노래들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었다. 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명언을 남긴 지강원이 인질 사건을 벌이면서 마지막으로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듣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지강원이 비지스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 그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할 만큼 비지스를 좋아했었다. 그런 생각의 근거는, 비지스 음악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착한 화음, 아름다운 멜로디의 절정이 ‘아이 스타티드 어 조크’다. 이 노래만 들으면 나는 자동으로 청춘의 내가 되어 그 시절의 여러 인연들과 조우한다. 원효로2가의 버스정류장일 수도 있고, 석양이 아름다웠던 대학의 호숫가일 수도 있고, 첫 MT를 갔던 대성리의 모기 많던 여름밤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비지스의 음악은 젊은 시절의 추억 대부분이 남겨진 종로를 떠오르게 한다. 첫미팅도 종로에서 했고 술을 처음 마셔 본 것도 종로였고 몇 번의 이별도 종로의 어느 다방이었을 거다.

지금도 나는 종로에 가면 비지스의 노래들이 배경으로 내 가슴에 깔린다. 얼마전, 비지스의 아름다운 보컬, 로빈 깁이 세상을 떠났다. 바로 ‘아이 스타티드 어 조크’를 부른 그다. 수년 전, 모리스 깁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미 공식적으로 비지스라는 그룹명을 쓰지 않기로 했었지만, 그래도 베리 깁과 로빈 깁이 살아 있었기에 언젠가 비지스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도있다고 혼자서 기대했었는데, 이제, 영영 그런 날은 오지 않게 됐다. 어리석었지만, 가난했지만, 많이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 시절이, 그 시절의 종로가 그립곤했고, 그때마다 나는 비지스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었다. 우리와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이 이렇게 하나둘 사라져 간다. 왠지 자꾸 눈물이 났던 한 주 였다.

조휴정ㆍKBS해피FM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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