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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침묵의 봄, 소란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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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침묵의 봄, 소란한 여름

입력
2012.04.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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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해로 기록된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 나온 지 꼭 반세기가 되기 때문이다. <침묵의 봄> 은 살충제가 자연과 인간에게 끼치는 가공할 폐해를 과학적이면서도 시적으로 고발한 명저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권리가 있고 자연은 오로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하던 시절에 말 그대로 혁명의 물꼬를 튼 책이다.

모든 혁명이 그렇듯 <침묵의 봄> 역시 엄청난 저항에 맞닥뜨려야 했다. 살충제 생산업계는 이른바 전문가, 과학자, 친기업적 언론인들을 총동원해 카슨의 메시지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비과학적이다, 악의에 찬 반기업적 선전이다, 사이비 환경보호론자의 환상이다 등등. 심지어 자본주의 경제를 타격하려는 공산주의자의 책동이라고까지 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침묵의 봄, 소란한 여름'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침묵의 봄> 이 미국 사회에 폭탄을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이래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과학저술이라는 평까지 나왔다.

발칵 뒤집힌 화공약품 산업과는 달리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책이 나온 바로 그 해 말까지 전미 각 주에서 40여종이 넘는 살충제 규제법안이 제출되었고, 케네디 행정부의 과학자문위원회는 살충제와 제초제의 오남용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침묵의 봄> 출간, 그리고 몇 년 뒤 아폴로 8호가 우주에서 찍어 전송한 지구 사진, 이 두 사건은 현대 환경운동의 탄생을 촉진한 산파요 아이콘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침묵의 봄> 50주년을 맞은 봄날, 환경 가치를 내세운 정당이 정식으로 출마한 총선이 치러졌다. 녹색당이 얻은 득표율은 0.48%, 지지자 10만3,000명. 우리의 환경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결과였다. 탈핵, 탈토건, 농업, 생명, 평화, 인권 등 하나같이 절박하고 중요한 사안들인데 결국 기존 정당체제의 철옹성을 넘지 못했다. 왜 그럴까? 우리 사회에서 환경과 녹색가치를 주류 의제로 만들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근본에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극단적으로 상품화된 사회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인지적으로 뒷받침하는 교육제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가치들이 다 그렇지만 인간의 천성에 의해 자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는 없다. 어떤 가치가 규범으로 수용되려면 어릴 적부터 가르쳐야 하고 사회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생명과 자연은 돈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한 글자씩 배워 문자를 깨치듯, 환경가치라는 문자, 즉 '환경 문해'를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아직도 경제 성장률이 종교처럼 숭배되고, 정부가 앞장서서 전국의 하천을 파헤치면서 그것을 녹색성장이라고 우기는 나라다.

<침묵의 봄> 은 봄이 왔지만 더 이상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을 섬뜩하게 그렸다. 먼 나라,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이 땅의 철새 도래지에서 새떼들의 합창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침묵의 봄> 은 '가지 않은 길'이라는 장으로 끝난다. 카슨은 말한다.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침묵의 봄> 이 나온 후 미국의 대법관 윌리엄 더글러스는 인류의 독살을 막으려면 환경 권리장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한 권리장전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50년 전 소란한 여름을 반환경 유해산업이 주도했다면, 21세기엔 시민들이 환경 문해를 요구하는 소란한 여름을 주도해야 한다. 그게 침묵의 봄을 막고, 어둠의 개발 카르텔을 깨는 유일한 길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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