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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는 하마' 민자사업의 허와 실] <1> 실태와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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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는 하마' 민자사업의 허와 실] <1> 실태와 폐해

입력
2012.04.2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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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G로 2조2000억 퍼주고… 30년간 19조 더 들어간다

지난해 6월 감사원은 적자에 허덕이는 전국 29개 민간투자사업 운영실태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2001~2009년 이들 사업에 세금으로 지급된 정부 보전금은 총 2조2,000억원. 감사원은 제대로 운영했다면 지급하지 않아도 될 세금이 4,400억원이나 된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현 추세라면 2040년까지 무려 18조8,000억원의 세금이 추가로 더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민간의 돈을 끌어들여 공공재를 짓는 민자사업은 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사업이 당초 예상대로만 된다면 말 그대로 '윈-윈'이다. 정부는 재정부담을 덜어 좋고 민간은 적정한 이윤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하지만 사업이 예상보다 부진할 경우 민간은 순식간에 '멋 모르고 뛰어든 바보'로 전락한다. 뒤따르던 투자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정부가 '당근'으로 제시한 것이 이른바 최소운영수입보장(MRGㆍMinimum Revenue Guarantee)이다. 한 때 투자유치의 효자 노릇을 하던 MRG 사업이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세금 낭비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9년 말 현재 전국에 운영 중인 민자사업은 총 116개. 이 가운데 70개가 MRG 방식 사업이며, 이 중 보전금이 지급되는 '적자' 사업은 29개에 달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서울 지하철9호선과 용인 경전철 사업 등이다. 서울시는 2009년 7월 9호선 개통 이후 운영사에 2009년 142억원, 2010년 323억원, 2011년 약 400억원의 손실 보전금을 지급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보전금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용인 경전철은 민간 사업자가 사업 해지를 통보해 아직 개통조차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정상 운영에 들어가더라도 30년간 2조5,000억원의 추가 재정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공무원 임금을 깎으면서까지 또 다른 빚(채권 발행)을 내는 수모를 겪고 있다.

경전철은 다른 지역에서도 골칫거리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부산~김해 경전철은 향후 20년간 1조6,000억원의 재정부담이 예상된다. 2002년 수요예측 당시 17만명 이상이던 하루 이용객이 최근 개통 이후엔 3만명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6월 개통 예정인 의정부 경전철 역시 연간 100억원씩 10년간 1,000억원의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추정됐다.

2000년대 들어 전국 곳곳에 선보인 민자고속도로 역시 아직까지 흑자 노선이 전무한 상태다. 9개 도로 가운데 작년까지 가장 많은 9,000억원의 보전금이 투입된 인천공항고속도로는 실제 통행량이 당초 통행량 예측의 42.5%에 불과해 앞으로 남은 10년의 MRG 계약기간 동안 대규모 세금이 계속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예측 대비 실제 통행량이 90%대인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빼면 모든 노선의 통행량이 예상치의 60%에도 못 미치고 있다. 2002년부터 작년까지 9개 도로에 쏟아 부은 보전금용 세금만 1조6,500억원이 넘는다.

이밖에 터널, 교량, 상ㆍ하수 및 쓰레기 처리시설도 단골 민자사업 아이템이다. 경기 양주시는 상수도 사업을 20년간 위탁키로 했으나 연간 1,100억원 이상 손실이 예상되자 최근 소송을 준비 중이다. 고양시는 벽제하수처리장 등 2곳의 위탁 시공ㆍ관리에 연간 200억원을 쓰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민자고속도로의 예산낭비 실태를 지적한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은 "결과적으로 수요예측 기관들이 막대한 세금낭비를 초래한 셈이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계속 엉터리 예측을 하고 있다"며 "이들의 예측 참여를 제한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 실제 통행량은 17~57%… 수요예측 뻥튀기

민자투자사업이 돈 먹는 하마가 된 것은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된 수요예측 때문이다. 사업성이 있게 꾸미려다 보니 자연히 수요를 부풀려야 했고, 이는 민간사업자에 대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혈세 투입이라는 악순환의 발단이 됐다.

22일 국무총리실과 국토해양부 등에 따르면 1994년 민간투자법이 도입된 이후 전국적으로 경전철과 도로, 전철 등 사회간접자본(SOC)시설 건립 붐이 일면서 2010년까지 투자만 40조원 가깝게 이뤄졌다.

하지만 경전철의 경우 협약체결단계 수요예측이 개통 전후 재조사에서 나타난 결과의 17.7~56.9%에 그쳤고, 주요 고속도로의 경우 실제 통행량이 예측치의 평균 57%에 머물렀다. 그만큼 실제로 수입이 줄다 보니 당연히 부족분은 국가나 지방정부의 혈세로 메워지게 된다. 이처럼 수요예측이 부풀려진 이유는 유권자의 표심을 노린 단체장과 이를 용인했던 정부, 이의 보증기관이 된 국책연구기관 등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용인경전철 사업과정의 비리혐의로 구속된 이모 전 시장은 최근 검찰조사에서 "(재선을 염두에 두고)큰 일을 했다는 성과가 기대돼 경제성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에 관여한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도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공인된 국가교통 데이터베이스가 없었고 일자리, 외자유치가 급했던 IMF체제라는 특수성 때문에 개발사업에 관대할 수 밖에 없었다"며 "용인시가 제출했던 과대포장 된 도시기본계획에 따라 타당성을 분석해줬다"고 실토했다.

지자체는 이를 바탕으로 MRG라는 유인장치를 마련해 예상수입의 80~90% 보장이라는 엄청난 재정지원을 약속하면서 투자자를 모집했고, 이는 결국 해당 지자체 주민들의 혈세 투입으로 이어지게 됐다. 당시 지자체와 국책 연구기관의 타당성 분석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는 대출을 담당했던 금융권이 타당성 조사를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수요검증을 다시 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민간투자사업 폐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민자투자사업이 국가 재정사업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백지화하기 보다는 단점을 고쳐나간다면 사회간접시설 확충에 얼마든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류시균 경기개발연구원 박사는 "민자투자사업의 바탕이 되는 MRG가 2009년 사실상 폐지되면서 민간투자 규모도 크게 줄어들었다"며 "지금 MRG가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얘기 되지만 사실은 필요 없는 사업을 추진한 정치권과 이를 용인한 연구기관, 개발사업에 반색한 주민 등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발주시점부터 제대로 계획된 사업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진 뒤 민간투자가 유치된다면 MRG는 철도처럼 막대한 초기투자, 운영비가 드는 SOC 확충의 효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범구기자 ebk@hk.co.kr

■ "영업비밀" 협약서 공개 거부

민자투자사업이'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는 데는 해당 지자체와 운영사간의 은밀한 협약도 한몫 하고 있다.

운영사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거둬가도록 지자체와 불공정 협약을 체결하더라도, 실시협약서 등 양측의 주요 계약내용에 대해 최장 30년 간 비밀을 유지하고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정보통제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의정부시 등에 따르면 의정부 경전철 시민모임은 지난달 27일 시에 경전철 협약 관련 자료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시는 사업계획서와 실시계획 등 일반적인 내용만 공개하고 실시 협약서는 공개를 거부했다. 시는 주요 재무내용 등이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시가 밝힌 비공개 이유는 운영사와 시가 2006년 맺은 비밀유지를 명시한 실시협약 때문으로 양 기관의 서면 동의 없이는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약 유효기간이 30년으로 돼 있어 의정부시와 의정부 경전철(주)가 합의하지 않은 이상 시민들은 2039년 이후에나 협약 내용을 볼 수 있다. 운영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불공정 협약이지만,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돈을 댄 시민들은 구체적인 협약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돼 있는 것이다.

전직 시장이 구속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용인 경전철도 그 동안 핵심 협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용인시 역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용인시와 용인 경전철(주)간의 불공정 협약 내용은 결국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예상운임수입 90%보다 적을 경우 용인시가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는데 예상운임수입은 산출근거도 명확하지 않고 하루 14만명으로 예상했던 교통 수요도 3~5배 정도 부풀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의정부 경전철 시민모임 관계자는 "민자사업의 운영적자는 시민세금으로 보전토록 돼 있는데 보전액 산출근거가 왜 영업비밀인지 모르겠다"며 "지자체와 운영사간의 비밀 협약으로 운영사만 배를 불리고, 그 피해는 빚이 돼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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