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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별별이야기] 허블 딥 필드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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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현의 별별이야기] 허블 딥 필드의 지혜

입력
2012.03.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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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우주망원경이 이루어낸 성취 중 가장 멋지고 영향력 있는 것을 고르라면 단연코 허블 딥 필드 관측 결과를 꼽겠다. 천문학자들은 1995년 12월 18일부터 28일까지 허블우주망원경을 사용해서 허블 딥 필드라고 명명된 북두칠성 근처의 좁은 하늘을 관측했다. 어두운 별들만 보일 뿐 은하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빈 하늘이었다. 겉보기에는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곳을 오랜 시간 노출을 주면서 관측하면 어두운 은하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열흘 동안 매일 15분에서 40분 사이의 노출을 주면서 342차례에 걸쳐서 허블 딥 필드를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하지만 막대한 노출 시간을 확보해야하는 허블 딥 필드 관측 계획에 처음부터 모든 천문학자들이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의 핵심 관측 계획을 수립하던 때부터 허블 딥 필드가 요구하는 노출 시간을 확보하려면 허블우주망원경이 지구를 150번 이상을 돌아야 하는데 이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지적이 저명한 천문학자들의 입에서조차 나오고 있었다. 당시에 알고 있던 지식을 기반으로 추정해보면 새로 발견해야 할 은하는 너무 어둡고 멀리 있어서 허블우주망원경의 성능으로는 관측할 수 없으니 시간 낭비라는 비관적인 견해였다. 그렇게 긴 노출을 주면 오히려 너무 많은 은하들이 사진에 찍혀서 혼동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정반대의 의견도 나왔다.

다행히 허블 딥 필드 관측 계획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라는 더 큰 가치의 힘을 바탕으로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기껏해야 형체 구분을 할 수 없는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의 희미한 은하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허블 딥 필드 사진 속에는 또렷한 모양을 한 2,000여개의 은하들이 담겨있었다. 우주의 나이가 20억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존재하던 은하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타원은하도 있었고 나선은하도 있었다. 허블 딥 필드 관측 계획에 반대했던 천문학자들도 박수를 보냈다. 천문학자들은 은하의 형성 이론을 다시 고쳐 써야 했다. 우주에는 우리가 추정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은하들이 훨씬 더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블 딥 필드 관측 자료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이를 계기로 천문학자들은 관측 자료를 공유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연구 모델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 갔다.

지난 금요일에 딸의 중학교 입학식에 다녀왔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선생님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 측의 태도였다. 그 학교에서는 폭행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었고 따라서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위원회가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는 자랑이었다. 아이들이나 학부모가 체감하고 있는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안일한 현실 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착잡했다.

문득 허블 딥 필드 관측의 지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것 같아 보이던 하늘 한 구석을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그 곳에는 별의 별 은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학교폭력대처 위원회가 열리지 않았었다고 자랑하기 전에 학생들의 생활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끈기 있게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겉보기에는 미동도 없는 것 같은 그들의 생활 속에는 나선은하처럼 팔을 벌리고 있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둥그런 타원은하처럼 움츠리고 있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심하게 충돌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허블 딥 필드를 관측하는 마음처럼 사랑스러운 우리들의 아이들을 잘 관찰해보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정보는 널리 공개하고 공유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열린 마음으로 같이 토론을 해봤으면 좋겠다. 위원회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먼저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이명현 SETI코리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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