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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소음이 돼버린 존재들에 목소리 부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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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소음이 돼버린 존재들에 목소리 부여하고 싶었다"

입력
2012.03.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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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는 열받아서 폭주를 하는 거야. 뭐에 대해서? 이 좆같은 세상 전체에 대해서. 폭주의 폭자가 뭐야? 폭력의 폭자야. 폭주는 우리가 화가 나 있다는 걸 알리는 거야. 어떻게? 졸라 폭력적으로."(163쪽)

소설가 김영하(44)씨가 장편소설로 5년 만에 내놓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문학동네 발행)는 폭주족 소년 제이의 이야기다. 부랑자 소녀의 몸에서 태어나 양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보육원 생활, 혼숙ㆍ노숙으로 이어지는 밑바닥 삶에서 자신을 단련한 그가 마침내 오토바이 폭주족 리더에 올라 신화적인 최후를 맞는 과정이 친구 동규의 증언을 빌려 서술된다.

제이를 "내 욕망의 통역자"이자 "정신의 샴쌍둥이"로 여기는 동규의 진술에서 제이는 예수나 맬컴 엑스 같은 정치적ㆍ영적 지도자의 아우라를 얻는다.(바꿔 말하면 동규는 이런 묵시록적 분위기를 내기 위한 소설적 장치다) 껑충한 키에 해진 옷을 걸치고, 생쌀을 씹으며 쓰레기더미에서 구한 책에서 지혜를 얻고, 만물에 빙의해 고통을 나누는 능력을 지닌 제이는 "세상의 모든 죄악은 고통을 외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네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일깨우며 좌절한 또래들을 규합한다.

제이가 1,000여명의 분노한 청춘들을 이끌고 "타인에 대한 무심이 유일한 도덕인 공간"(16쪽) 서울의 한복판을 찢을 듯 질주하는, 소설의 하이라이트인 광복절 대폭주를 작가 김씨는 압도적 필치로 묘사한다. 고속버스터미널 공중화장실에서 제이가 출생하는 소설 도입부 장면이나, 가출 청소년들의 야만과 다름없는 혼숙 생활에 대한 묘사 역시 징그러울 만치 생생하다.

2010년 9월부터 뉴욕에 머물며 창작하고 있는 김씨를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_폭주족이라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소재를 디테일까지 살려 묘사했다. 어떻게 취재했나.

"취재와 자료 조사는 4년 전 한국에 있을 때 거의 다 마쳤다. 실제 취재 과정이 소설 후반부에 녹아있다.(마지막 장에 소설가인 1인칭 화자가 등장, 동규 등 제이와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다닌다) 물론 전적으로 사실은 아니다."

_집필 과정에서 원고의 상당 부분을 버렸다고 들었다.

"책 분량의 세 배쯤 버린 것 같다. 돌이켜보면 취재, 인터뷰 등 작업 초반부는 비교적 쉬웠다. 끔찍한 현실을 문학의 언어로 어떻게 소설이라는 예술 형식 안에 적절히 담아낼지를 고민했던 후반부 작업이 훨씬 어려웠다. 이야기에 걸맞은 문체, 플롯을 찾아내는데 오래 걸렸다. 여러 번 소설을 해체하고 새로 쓰는 과정이 뒤따랐다."

_'한국이라는 특수 상황을 소설 소재로 삼지만, 다루는 것은 보편적 주제'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어떤 주제를 표현하려 했나.

"'소음에 질서를 부여하면 음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소음과도 같은 존재다. 어디에나 있지만 의미 있는 소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이 소음을 어떻게 '목소리'로 바꿀 수 있는가를 이번 소설을 쓰며 계속 고민했다. 소설 제목도 이런 고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_20대를 등장시킨 지난번 장편 <퀴즈쇼> (2007)에 이어 재차 아랫세대의 이야기를 다뤘다.

"작가는 타인에게서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기보다, 제 안에서 타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존재라고 본다. 내 마음 속에 미처 발굴되지 않은 유년이 남아 있고, 제이와 동규는 내 속에 존재하는 타자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설의 초고를 끝내고 문득 이젠 내 안의 유년과 결별할 때가 왔음을 예감했다. 아마 다음 장편은 좀 다를 것 같다."

_<검은 꽃> (2003), <퀴즈쇼> 에 이어 고아가 주인공인데.

"어려서부터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팔도를 떠돌며 살았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에 작가가 됐는데 그때마다 낯선 세상에서 새로운 규칙을 익혀야 했다. 지금도 친구 하나 없는 도시에 살고 있다. 나를 비롯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고아의 그림자를 뒤에 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세대의 경험과 규칙이 시시각각 무화되는 세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고아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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