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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보호할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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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보호할 가치'

입력
2011.11.0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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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에게도 '등잔 밑의 어둠'은 있다. 잘게 나뉜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가다 보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대학 졸업 당시 가졌던 개론 수준의 지식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등잔 바로 밑이 어두운 '등하불명(燈下不明)'과는 다르지만, 실제보다 범위를 넓혀 전문성을 생각하기 쉬운 일반인의 눈에는 매한가지로 비친다. 성매매 알선 등의 행위는 형법 314조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인 '업무', 즉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그제 대법원 판결로 드러난 검찰과 1ㆍ2심 법원의 '법리 오해'도 비슷하다.

■ 검찰은 성매매 업소에 조직원을 둘러 세워 손님을 막는'병풍치기'를 행한 조직폭력배를 범죄단체조직(형법 114조) 등에 업무방해 혐의까지 더해서 기소했다. 1ㆍ2심은 이를 그대로 인정해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보호 가치나 필요성이 그리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는 부분적 주저에도 불구하고 업무방해죄의 보호 법익인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업무방해죄의 '업무'는 위법한 침해로부터 보호할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중대범죄이자 반사회적인 성매매 알선은 그에 해당할 수 없다고 명쾌히 잘랐다.

■ 검찰과 1ㆍ2심 판단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형법 각론 교과서가 예외 없이 '계속성'과 '보호할 가치'를 잣대로 '업무'해당성을 따지고 있다. 특히 '보호할 가치'와 관련, '사무나 활동 자체의 위법 정도가 중해서 사회생활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는 경우'는 엄격히 배제한 판례도 확고하다. '등잔 밑의 어둠'이라는 짐작이 이 때문이다. 물론 특별한 고심의 흔적은 더듬을 수 있다. 불법 노점상의 영업에도 인정되듯, '보호할 가치'의 판단에는 형식적 적법성보다는 사회적 용인이라는 실질적 잣대가 중요하다.

■ 성매매를 법이 금지하고 있더라도, 묵인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그 또한 나름대로의 '보호할 가치'를 띨 만하다. 범죄단체 조직 등의 혐의만으로 다뤄서는 조폭이 성매매 업주에 안긴 고통을 직접 덜 수도 없다. 또 두 불법이 충돌할 경우 '보호할 가치'의 판단은 양쪽 불법을 저울로 달아 기우는 쪽으로 정해지리란 점에서 느슨한 구성요건 해석을 기대했을 법하다. 이번 판결로 성매매의 반사회성에 대한 법원의 자세는 확연해졌다. 안 그래도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관련 종사자의 인권 침해에 면죄부를 준 것처럼 오인될 소지 또한 커졌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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