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대출금리 인상 카드를 꺼냈다. 내달부터 가계대출을 정상화하는 대신 대출금리를 올려 수요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모양새를 갖춘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최근의 예금금리 하향세와는 배치돼 논란의 소지가 있다. 결국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탓에 대출길이 막힌 서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새, 은행들만 예대마진을 높여 배를 불리게 된 셈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4%대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금리고정 모기지론'의 가산금리를 0.2%포인트 인상했다. 이 상품은 2016년까지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30%까지 늘리라는 정부의 요구를 수용해 10일 내놓은 것.
최근 이 상품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전월 대비 가계대출 증가율이 정부 억제선인 0.6%에 이르자 금리를 올린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율이 높아지면서 금리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신한은행은 22일부터 마이너스통장대출의 가산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신한은행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농협과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은 아직까지 대출금리 인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가계빚 억제책이 지속될 경우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대출을 억제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은행들은 정부 핑계를 대지만, 예금금리 하향세와는 거꾸로 대출금리를 올림으로써 편법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년 기준 정기예금 금리의 경우 지난달 말 연 4.2~4.3% 수준이었으나, 이달 초 뉴욕발(發) 금융쇼크로 은행에 돈이 몰리면서 0.1~0.3%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때문에 현재 2% 초반대인 은행들의 예대마진율(대출이자율에서 예금이자율을 뺀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게 분명하다.
결국 서민들 입장에선 대출 통로가 크게 좁아진데다 이자 부담마저 추가로 떠안게 된 셈이다. 실제 이날 시중은행에 대출 가능성을 타진했더니, "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이 모두 중단됐으니 다음달에 다시 신청해 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달에도 금리를 우대해 주는 특별승인 대출, 다른 은행의 고객을 싼 이자로 끌어오는 대환대출 등은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시중은행의 대출 관계자는 "9월 초 대출이 재개되더라도 돈이 풀리는 추석을 전후로 또 다시 대출중단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당장 가계빚 증가세를 잡는 게 급하니 어쩔 수 없다. 현재로선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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