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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화사대주의 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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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문화사대주의 도 넘었다

입력
2011.06.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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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세계 백화점에 최근 제프 쿤스의 300억원짜리 조각이 설치되었다. 100억~300억 원을 호가하는 쿤스의 조각은 이외에도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오리온그룹 회장은 집 식당에 100억원어치의 외국 작가들 그림을 걸었다.

명품병과 문화사대주의가 심각하다. 청계광장에 세운 올덴버그의 '스프링'과 여의도 포스코 앞에 서 있는 스텔라의 '아마벨'도 수십억원씩 하지만 그 장소에 세워야 할 타당성은 없다. 외국 작가의 유명세 때문에 세워진 이 작품들은 문화사대주의의 상징이다.

국립 현대미술관이 앞장서

한국 자본은 외국작가 작품은 수십, 수백억원에 사면서 국내작가 작품은 홀대한다. 자본 유입이 없는 국내 미술계는 생존 작가 중 순수예술 작품이 1억 원을 넘는 조각가 한 사람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문화사대주의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이 평가절하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진다.

5월 28일 홍콩 아시아현대미술 경매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자오우지(趙無極)의 유화가 60억원에 팔렸다. 경매가 1위다. 백남준의 설치작품은 6억원에 팔려 하위에 머물렀다. 언론은 "작가 사후 작품가격이 올라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남준의 참패"라고 했다. 문화사대주의는 자오우지보다 미술사적으로 훨씬 중요한 백남준의 작품을 6억원짜리로 전락시켰다. 백남준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희생자다.

중국 미술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현상은 중국인의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만들었다. 중국인들은 자국 작가 작품을 거액에 사들여 그들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중국 작가들은 세계 시장에서 차이나 프리미엄을 누린다.

한국은 미술계 수장도 문화사대주의에 앞장선다. 국립 현대미술관은 지난주 덕수궁에서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전을 개최했다. 미국미술을 소개한다는 자부심이 밴 전시의 기자 간담회에서 현대미술관장은 옛 기무사 터에 세우는 서울관에 외국인 큐레이터를 채용할 구체적 계획이 있어 지금 몇 사람을 염두에 두고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륀지' 공화국의 국립 미술관장답게 외국인에 대한 신봉이 두텁다. 서울관 공사는 국내 컨소시엄이 맡았지만 공사 시작 전에는 노먼 포스터나 장 누벨 같은 건축가의 참여를 언급했다. 서울관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만들기 위해 제임스 터렐의 전시를 구상 중이라고도 했다.

국립 현대미술관장이 꿈꾸는 세계적 미술관은 외국인이 기획하고 외국인이 전시하며 구경은 한국인이 하는 문화사대주의 미술관이다. 우리 문화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영혼을 외국인의 손으로 빚게 하자는 발상이다.

모마(The Museum of Modern Art), 뉴욕 현대미술관은 달랐다. 1929년 개관한 모마는 20여년 동안 유럽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미국 미술을 전시하려 해도 작가가 없었다. 프랑스 미술의 종속에서 벗어나 미국 거장을 만들고 싶었던 모마는 무명 화가 잭슨 폴락을 발굴해 키운다. 미국 미술의 역사는 폴락의 작품을 모마에 걸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미국 미술은 세계 정상에 올라선다.

국립 현대미술관은 60년 전 모마처럼 자국 미술을 만들어내려는 절박함도, 국내 작가를 발굴하고 키울 자긍심도 없다. 외국 작가를 데려다 세계화로 둔갑시킨 문화사대주의 미술 소개에만 급급하다.

국내 작가 발굴해 키워야

'위대한 탄생'의 옌볜 시골 청년 백청강을 우승으로 이끈 것은 멘토 김태원이다. 한국 미술계에 넘쳐 나는 백청강을 발굴하고 키워 낼 전문성과 우리 문화의 자부심을 가진 미술계 수장이 필요하다. 자국 문화를 만드는 것은 고도의 감각과 지식이 필요하지만, 돈 주고 외국 작품 가져오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국은 국력과 자본이, 미국은 모마가 주도한 프로그램이 세계적 작가를 키워 냈다면, 지금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비추어 볼 때 한국 미술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화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미술을 만들고 우리 작가를 키우겠다는 관심과 의지만 있어도 세계화는 어렵지 않다. 자본 유입과 제도 마련은 오히려 부차적 문제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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