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슴다. 부자 제 곳간 헐어 배곯는 사람들 보릿고개 넘겨 주던 풍습도 있었잖았슴까. 하물며 친구끼리라면 서로 도와야디요.”이웃의 불행에 눈감을 배포가 없는 옌볜(延邊)댁의 말이다. 가사도우미의 말에 친구의 최고급 아파트에 모여 있던 4명의 여고 동창생들은 심사가 뒤틀린다. “독립군 후손이라잖니. 툭하면 잘난 척이야. 꼭 가르치려고 들어”(‘매기의 추억’ 중).
현재 한국인에게 옌볜이란 무엇인가? 두 편의 연극이 답한다. 모두 고급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옌볜 출신 중년 여성을 가사도우미로 뒀다.
극단 작은신화의 ‘매기의 추억’은 486세대의 욕망과 위선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절망을 유쾌하게 폭로한다. 여기서 옌볜댁은 잊고 사는 우리의 가치를 천연덕스레 상기시켜 주는 계기점이다. 새 한국 풍속도에 대해 작가 장성희씨는 “양극화, 승자 독식, 상대적 박탈감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그렸다”며 “출구를 찾지 못한 한국 사회를 강남의 현실로부터 유추했다”고 말했다.
치고받는 언어의 맛이 재미의 요체인 이 무대에는 서이숙 박남희 등 5명의 여배우가 맛을 더한다. 최용훈씨 연출. 6월 19일까지 정보소극장. (02)889_3561, 2
극단 그린피그의 ‘연변 엄마’는 신예 작가 김은성(34)씨가 구사하는 속도감이 무기다. 제목은 가사도우미 복길순의 별칭이다. 그에게 한국이란 상실의 장소다. 아들은 서울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쳤고, 딸은 아예 소식이 끊겼다.
암울한 이야기지만 신예 작가 김씨의 입심과 속도감 덕에 활력이 넘친다. 사투리를 통해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이 무대에는 동국대 북한학과 95학번이란 그의 이력이 큰 몫을 했다. 1인 다역을 하지 않고 20여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무대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다.
연극의 시선은 현재 한국이 철저히 속물화해 있다는 관점에 충실하다. 각 장면은 복길순이 현재 보유 중인 돈의 액수로 구분된다. 박상현씨 연출, 강애심 김재건 등 출연. 1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02)764_7462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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