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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광화문에 동상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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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광화문에 동상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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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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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갈 때마다 경기 양주 장흥면 삼상리 초등학교 앞을 지난다. 활짝 열린 정문 너머로 교정에 나란히 세워진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이 보인다. 운동장 왼쪽에는 하얗게 칠한 '독서하는 소녀상'이 구릿빛 유관순 동상과 대조를 이룬다.

동상들은 가까이 보면 거칠고 조악하다. 섬세한 묘사에 적합하지 않은 시멘트를 사용해 대충 만들었다. 조잡하지만 다정한 맛도 있다. 위인이나 영웅이라기보다 동네 아저씨와 할아버지처럼 친근한 모습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풍경은 1970ㆍ80년대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반공 소년 이승복 동상이 사라진 것뿐이다. 이순신 세종대왕 이승복 동상은 과거 초등학교 운동장을 장식하던 동상 3종 세트다.

동상은 "권력자의 위치에서 역사를 명상하는 것"이라고 했던 미술이론가 마일스의 말을 상기한다면 초등학교 운동장만큼 이념적인 공간도 없다. 동상 3종 세트는 중학교부터 찾아 볼 수 없다. 동상을 이용한 이념교육이 중학생부터는 효과가 없다는 것일까.

초등학교 운동장 동상들을 그대로 확대해 놓은 게 광화문 광장이다. 국가의 상징 광장이 어쩌다 우리 시대에 초등학교 수준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운동회와 더불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광화문 광장은 초등학교에서 동상과 이념만 베껴왔지 추억을 남겨줄 어떤 아름다움도 옮겨 오지 못했다.

광화문 세종대왕상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중국의 동상을 모방한 듯 위압적이고 우악하다. 세종대왕은 이렇게 백성을 주눅 들게 하지 않았다. 차라리 초등학교에 있는 소박한 크기의 시멘트 동상이 세종의 애민(愛民) 정신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

이순신 동상은 전체 높이가 17m다. 동상의 초월적인 높이는 복종심을 강요한다. 우러러 보고 고개를 들었다가 숙이며 경배하도록 고안된 장치가 동상의 높이 개념이다. 그래서 경찰과 군대를 경성 무력(hard power)이라 하고 동상을 연성 무력(soft power)이라고 한다.

삭막해진 광화문에 동상을 또 세우자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광화문에 대한민국 정체성이 없으며 이승만 동상을 세우면 이 정부 최고의 업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승복 대신 이승만을 넣어 신종 동상 3종 세트를 만들자는 발상은 웃어넘길 만하다. 그런데 그 동상 세트를 광화문에 세우려는 강한 실천의지는 유머 수준을 넘어선다.

이승만 동상 건립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만드는 것인지 정치 문외한인 조각가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대적, 문화적으로 역행한다는 것은 분별할 수 있다. 국가 상징 광장에 권력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되는 동상을 세우자는 것은 지금 한국의 성숙한 문화의식과 어울리지 않는다.

꼭 동상을 세우려거든 프랑스의 상징 샤를르 드골 광장의 개선문을 보고 배울 일이다. 개선문의 조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뤼드의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 때 침공한 오스트리아ㆍ프러시아 연합군에 맞서 진군하는 시민군을 묘사하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정신을 표상한 이 조각은 역사를 권력자의 위치가 아니라 시민의 위치에서 명상한 기념물이다.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면 이 정부를 향해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은 '철학이 없다' 고 비웃지 않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광화문을 초등학교 운동장만도 못하게 만드는 정도의 철학은 없는 게 낫겠다. 동상은 그만 세우고 탱크처럼 답답해 보이는 세종대왕상과 경직된 광장을 어떻게 순화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더 필요한 문화적 과제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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