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학생들 잇단 자살 책임 논란"학점 경쟁 탓 교류 없고 외로운 학생 많아"일부 "개인 문제를 무리하게 확대" 시각도
'네 열등감을 깨우치려 가르친 것이 아닌데 외로이 스스로의 목숨을 던지는 너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 내가 죄인이다.' 국내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카이스트(KAIST) 학생 4명이 최근 잇따라 자살하자 이 학교 경영대학 이재규 교수가 8일 학생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평점 3.0 미만이면 등록금을 면제받지 못하는 '징벌적 등록금제'가 자살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이 교수의 이메일에서 보이듯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몬 카이스트의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학교의 L모 교수는 "우리 대학에는 굳이 경쟁하지 않아도 이미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모여 있어 충분히 경쟁적인 환경이 갖춰져 있다"면서 "공부 못하면 밥도 못 먹고 국물도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해 지난해 서남표 총장의 연임을 교수 90% 정도가 반대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홀로 방치된 터라 자살은 이미 예견됐다. L 교수는 "교수들이 대학원생을 관리하기도 바빠 학부생들은 거의 손을 놓는데 학점 경쟁 때문에 동기, 선후배간 유대관계도 매우 약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학생 정모(20)씨는 "학점 때문에 학생들간 교류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안에서만 보내다 보니 외롭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고도 했다.
외부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은혜(25ㆍ경희대 언론정보4)씨는 "4개월 만에 4명이 자살한 것은 학교 운영방향에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과학적 상상력을 배우면서 미래를 설계해야 할 학생들이 무조건적인 경쟁에 내몰려 안타깝다"고 했다. 김정호(24ㆍ건국대 경영4)씨는 "특히 1월 자살한 실업계고 출신 학생의 학교 적응을 학교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것은 학생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교육개혁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강남훈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은 과도한 경쟁이 오히려 교육에 역효과를 낸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학문은 협동 속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훈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교수는 "학점과 등록금을 연결시키는 것만 대학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다"라며 "수업의 질을 높이고 강의 여건을 개선하는 등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은 많다"고 강조했다.
외국 명문 대학들은 더 극심한 경쟁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서 총장의 견해에 대해서도 대부분 동의하지 않았다. 김성훈 교수는 "미국 명문대에서 공부하면서 스스로와의 싸움을 벌였지 동료들과의 학점 경쟁은 하지 않았다"면서 "카이스트처럼 학점이 낮다고 바로 등록금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어디에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도 "외국에서 학점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화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카이스트가 세계 명문대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 학생들에게 경쟁심리를 부과하기 위한 장치"라고 비난했다.
다만 일부 시민은 개인적인 문제를 학교 운영방향의 문제로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보였다. 공무원 이모(29)씨는 "자살한 학생들은 사고가 협소하고 항상 1등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서 총장이 하던 개혁은 상당히 필요한 일이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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