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 상황에서 서로 들이받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바로 코뿔소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 코뿔소가 돼가고 단 한 사람만 남아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무대가 바로 우리의 세상 아닐까요."
지난해 싱가포르 공연에 이어 올해 다시 국내에 창작무용극 '코뿔소'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 현대무용가 이태상(38)씨의 말이다. 이씨는 2009년 초연 이후 국내서는 두 번째로 25, 26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선다.
동명인 이오네스코의 희곡에서 영감을 얻은 창작무용극 코뿔소는 끊임없이 달려가도 그 자리에 있는 듯한 몸짓 등을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기만에서 깨어나기를 표현한다. 마을에 나타난 코뿔소를 보고 처음에 당황하던 무용수들은 점점 그 몸짓을 따라한다. 코뿔소가 돼가는 것이다.
"김재진 시인은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코뿔소가 되거나 되지 않거나 그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 우리는 모두 혼자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이씨가 '코뿔소'란 주제의식을 희곡에서만 차용한 것은 아니다. 그는 "공연을 만들기 전 지리산에서 별과 내가 친구인 듯 여행을 하다 서울로 돌아와 남부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택시기사를 봤다"며 "어쩌면 우리 모두 코뿔소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코뿔소가 되지 말고 독야청청하라? 아쉽게도 그는 정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의 공연이 코뿔소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부조리 극인 것과 마찬가지다.
"주제의식이요? 그런 것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코뿔소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단 한 명의 무용수가 자신이 코뿔소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는 게 극의 결말이죠. 관객들이 조용함 속에 강렬한 춤을 통해 영감을 얻어간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25,2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02)3216-1185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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