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폭행한 사법연수원생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한 사건이 있었다. 법원은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예비법조인으로서 양심을 저버렸다"고 꾸짖었다. (기성)법조인이 (예비)법조인에게 '양심 불량'을 중요한 이유로 엄벌에 처한 것이다. 법조와 떨어져 살아가는 많은 일반인들에게 비친 그들의 양심이란 무엇일까.
양심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곳은 헌법 제19조인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다. 여기서의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는 설명이 있다(1996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을 참으로 잘 정리했다는 생각이다.
다음에 등장하는 곳은 헌법 제103조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돼 있다. 재판의 독립성을 강조한 내용이지만, 여기서 법관의 양심이 제19조의 국민의 양심과 크게 다르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판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의 소리' 정도의 의미로 와 닿는다.
인격을 건 진지한 마음의 소리
한국일보가 큼직하게 보도한 판결이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모(47) 씨에 대한 선고였다. 그는 북한 찬양 동영상 20건을 인터넷에 올렸고, 법정에서도 "김일성 부자는 위대한 분들로 그분들을 위해 평생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를 석방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과 성숙도에 비춰 그 정도 행위는 위험이 매우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가보안법에 합헌결정이 내려졌고 남북 대치갈등이 현존하는 현실이기에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징역 1년을 선고하지만, 그를 계속 구속하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집행유예 2년을 붙여 사회로 돌려보냈다. 이후 상급심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일단 '양심에 따른 심판'에 공감한다.
(예비)법조인의 양심 대목을 다시 생각한다. 변호사의 문제는 빼놓도록 하자. 검찰을 대상으로 양심이라는 말이 뚜렷이 명시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기소해야 한다는 명제는 법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터이다. 국가기관인 법조인이기에 '기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기소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에 따라야 한다는 '헌법적 의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8일 예비법조인의 양심을 언급한 판결이 있었고, 19일 법관의 양심에 따라 반공법 위반 피의자를 석방한 판결이 있었다. 20일 서울중앙지검 공안부가 국가행사 홍보포스터를 훼손한 피의자를 기소할 방침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법조인의 양심은 무엇일까 새삼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기소 방침만으로 관심을 끄는 이유는 'G20 쥐 그림 포스터' 사건이 워낙 국민들의 흥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당초 경찰이 용의자를 검거했을 땐 단순한 재밋거리로 퍼져나갔던 행동이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과잉대응 논란으로 번졌다. 경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자 검찰이 다시 사건을 맡아 공안사건으로 취급하여 정식으로 기소하겠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정말 대단한 사건'이 돼버린 셈이다.
기소ㆍ심판의 당연한 전제조건
이 사건에 얼마나 많은 공안사범들이 연루돼 있는지, 법정에서 어떠한 진실공방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검찰이 기소를 결정하면서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에 따랐는지는 물어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를 기소하지 않고서는 (검찰)자신의 인격적인 존재 가치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진정한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면 기소는 당연하고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채 기소해 버린다면 '양심을 저버린 법조인'으로 불리게 될 터이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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