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금속활자와 POD
알림

[편집국에서] 금속활자와 POD

입력
2010.09.14 12:13
0 0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무려 138년 이상 앞선다는 고려시대의 금속활자가 공개돼 화제가 됐다. 이 활자가 진품이라면 세계 인쇄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의 큰 사건이다. 그러나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은데다, 서법(書法)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어 학계의 검증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해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창안하게 됐을까. 고려는 인구가 적어 독서와 학문을 하는 사람의 수가 적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사람의 수가 적다고 해서 읽는 책의 종류마저 적은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책의 부수는 적으면서도 여러 주제에 걸쳐 고루 찍어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나무로 목판(木板)을 만드는 데는 비용과 인력이 만만치 않게 들고 한 종류의 책 밖에 찍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착안된 것이 튼튼한 쇠붙이로 된 활자를 한 벌 만들어 놓고 여러 종류의 책을 찍어내는 방법이었다. 마침 구리를 불려 범종과 불상, 동전을 만드는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문화가 꽃을 피웠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한양에서 가져간 10만 개의 금속활자는 에도(江戶)시대 출판문화의 기반이 됐고 그것이 오늘날 출판대국 일본으로 이어졌다.

교보문고가 지난달 말부터 독자의 주문을 받아 품절되거나 절판된 책을 찍어 주는 '주문형 출판'(PODㆍPublishing On Demand) 서비스를 개시했다. 디지털 파일로 저장돼 있는 내용을 인쇄해 종이책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국내의 품절ㆍ절판된 책 1만7,000종이 우선 대상이고, 내년에는 해외도서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격도 원래의 책값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독자들의 추가 부담이 크지 않다.

POD 서비스가 나오게 된 정황이 금속활자가 출현했을 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요즘은 고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 모든 책에 대한 수요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가 빨라 사람들의 관심과 기호가 급변하는데다,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리지만 한 달에 1,2권만 팔리고 마는 책도 많은 양극화 현상이 벌어져 책의 수명이 짧다. 책의 종류는 많지만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을 읽은 이의 수가 적은 것은 고려 때와 마찬가지다.

좋은 책이라도 금새 서점의 진열대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서둘러 사두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책 구경을 못 한다는 것은 책을 웬만큼 읽는 사람이면 안다. 출판가에서는 국내에서 출판된 책의 40% 가량이 품절ㆍ절판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속활자와 달리 POD 서비스는 영미권에서 먼저 개발됐고, 디지털인쇄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 도입됐지만 학술논문, 대학교재 등 일부 분야에만 쓰였을 뿐 책 출판에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출판인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POD서비스가 미래형 출판으로 관심의 대상이었다.

교보문고가 독자들로부터 주문을 받은 결과 2주일 동안 1만5,000권이나 신청이 쏟아졌고, 이중 100여권은 이미 독자에게 건네졌다고 한다.

PC와 스마트폰에다 전자책까지 등장해 종이책을 멀리 하는 시대에 POD 서비스가 고려의 금속활자만큼 책 문화에 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지 기대된다.

남경욱 문화부차장 kwn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