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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귀뚜라미 소리에 시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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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귀뚜라미 소리에 시를 읽으며

입력
2010.09.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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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리 제 집필실이 좁고 남루하지만 이름만큼은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청솔당(聽蟀堂)이란 은은한 당호(堂號)를 가지고 있지요. 누옥(陋屋)에 과분한 이름이지만 이름 덕에 고대광실이 부럽지 않지요. 뜻을 말하지 않고 '청솔'이라 소개하면 대부분 '푸른 소나무'로 이해하지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요.

웃으며 고개 끄덕여주지요. 청솔(聽蟀)은 '시경(詩經)'에서 빌린 말이지요. 당신도 당풍(唐風)에서 '실솔재당'(蟋蟀在堂)을 읽어보면 제가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이유를 알 수 있지요. 청솔당이란 제 당호에서 그 즉시 실솔재당을 읽어낸 분이 두 분 있었지요. 한 분은 고향의 서예가 선배이고 또 한 분은 언론계 선배이지요.

그러한 고수를 만나면 잘난 척하는 제 꼴이 부끄러워 얼굴부터 먼저 붉어지지요. 방학 마치고 강의실로 돌아오니 저를 부끄럽게 만든 서예가 다천(茶泉) 선배가 청솔당(聽蟀堂)이란 당호를 써서 보내왔지요. 일필휘지에 제 연구실 당호도 청솔당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제 연구실에서도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지요. 그 덕에 참 행복하지요. 백로(白露) 지나며 하늘은 높고 푸르러지는데 그 하늘을 마당 삼아 우는 귀뚜라미 소리에 제 귀 또한 맑아지지요. 하늘 마당에서 혼자 노래하는 귀뚜라미가 외울 것 같아, 그 노래에 맞춰 조용조용 시를 읽어보는 시간이지요.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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