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2) 로테르담-최첨단 현대건축 실험의 장

알림

[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2) 로테르담-최첨단 현대건축 실험의 장

입력
2010.08.18 12:12
0 0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옛모습을 복구하거나 새로 건설하거나.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공습에 잿더미가 되었던 네덜란드 제2의 도시 로테르담은 후자를 택했다. 살아남은 건물이 별로 없는 폐허를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혁신적인 건물들로 채우기로 했다. 전후 로테르담은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었다.

창조와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로테르담은 현대건축의 경연장이다.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렘 쿨하스를 비롯해 렌조 피아노, 알바로 시자, 벤 판 베르켈 등 세계적 건축가들의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시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 도시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건축설계 그룹은 베르켈의 UN스튜디오와 MVRDV, KCAP 등 세계적 설계사무소를 포함해 수백 개나 된다. 세계 최대의 건축 자료관이자 박물관인 네덜란드건축연구소(NAI)도 이곳에 있다. 시민들은 자부한다.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건축의 수도는 로테르담이라고.

로테르담의 첫 인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달리 현대적 건축물이 많기 때문이다. 시는 건축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자전거, 도보, 유람선 등 여러 방식의 다양한 건축 기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로테르담 건축 기행은 이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에라스무스 다리에서 출발한다. 마스 강에 걸린 아름다운 다리로, 베르켈이 설계했다. 백조의 긴 목을 닮았다 해서 별명이 ‘백조’다. 에라스무스는 이 도시 출신인 16세기의 위대한 인문주의자다.

에라스무스 다리 건너편인 마스 강 남안, 콥 반 자우드 지역은 강을 따라 높이 100m 이상인 고층빌딩이 늘어서 ‘마스의 맨해튼’으로 불린다. 변모를 거듭하는 젊은 도시 로테르담이 느껴지는 곳으로, 199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렌조 피아노의 KPN 빌딩,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고층 아파트 뉴올리언즈, 주상복합 고층건물 몬테비데오, 로테르담에서 가장 높은 건물(160m)인 마스토렌 등이 만들어내는 날렵한 스카이라인이 인상적이다. KPN 빌딩은 기우뚱한 정면을 하나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이색 건물이다. 바로 옆에는 렘 쿨하스의 스펙터클 야심작 ‘수직 도시’(일명 ‘데 로테르담’)가 들어선다. 2013년 완공 예정인 이 건물은 3개의 타워 빌딩 안에 사무, 주거, 주차, 쇼핑, 문화시설을 다 집어넣어 도시 기능을 압축한다.

시청이 있는 도심 주변에도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는 흥미로운 건축물이 많다. 외벽을 빨간 수직선들로 치장한 레드 애플 아파트는 가구마다 창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바로 옆 빌렘베르프 빌딩은 건물 중간을 비스듬히 잘라낸 듯한 유리 경사면이 인상적이다. 영화 ‘성룡의 CIA’에서 성룡이 바로 이 유리판을 타고 도망친다.

도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별난 건물은 큐브하우스다. 기둥 위에 주사위 모서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양이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만 같지만, 38가구가 사는 아파트다. 큐브 하나가 한 가구다. 해체주의 건축가 피터 블롬이 연필을 세운 듯한 아파트인 펜슬하우스와 세트로 설계했는데, 1984년 건립 이래 명물이 되었다. 블롬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큐브로 숲을 만들었다. 보행 육교 위에 지어 그 아래로는 차량이 다닌다. 실험적이다 못해 괴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건물을 허용한 로테르담 시와 시민 의식이 놀랍다.

로테르담 시의 도심 개발 프로젝트 담당자인 안네테 마티센은 이처럼 과감한 건물들이 들어설 수 있는 배경으로 항만도시 특유의 개방성을 꼽는다. 그는 “로테르담 시민들은 현실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며, 실험적인 건축을 즐기는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추진 중인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들은 로테르담의 미래 지향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 시내 블라크광장에 들어설 마켓홀은 높이 40m 길이 165m의 거대한 터널형 아파트 안에 농수산물 시장을 집어넣어 아파트 창에서 시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로 돼있다. 렘 쿨하스가 설계해 2015년 완공 예정인 시청 신청사도 건물 중간이 뻥 뚫려 구름 위에 뜬 듯한 모양으로 도심 풍경에 이채를 더할 전망이다. 안네테 마티센은 “로테르담은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 도시”라며 “미래의 로테르담은 더욱 과감하고 창조적인 면모를 띨 것”이라고 자신했다.

로테르담= 글ㆍ사진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인터뷰/ 네덜란드건축연구소 수석 큐레이터 린다 블라센로드

네덜란드건축연구소(NAI)는 ‘건축의 수도’라는 로테르담의 자부심을 뒷받침하는 기관이다. 건축 자료관과 전시관으로 이뤄진 일종의 박물관이다.

NAI의 수석 큐레이터 린다 블라센로드는 “NAI는 전시, 교육, 토론 등으로 전문가와 일반인들에게 건축문화를 알리고 고양시키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브라질, 인도, 중국에서 진행 중인 국제협력 프로그램 ‘매치 메이킹’,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의 네덜란드관 운영도 NAI가 하는 일이다.

“매치 메이킹은 건축설계의 전단계로서 조사ㆍ연구와 개념화에 능한 네덜란드의 경험을 외국의 건축 프로젝트와 연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저지대 국가여서 홍수 대응이 발달한 네덜란드의 노하우를 매년 홍수 때문에 고민하는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전하는 식으로요.”

NAI가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하는 장기 사업은 ‘대응하는 건축’(Architecture of Consequence)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건축가는 멋진 건축물을 짓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 현안에 건축적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대응하는 건축’입니다. 우리는 7개의 어젠다를 설정했죠. 에너지, 사회융합, 시간, 공간, 음식, 가치 창조, 건강이 그것입니다. 이민자가 많은 다민족 다문화 도시의 사회융합을 촉진하는 건축, 시간과 공간 활용에 좀 더 인간적 요소와 쾌적함을 더하는 도시 설계,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농업 에너지로 전환하는 환경건축 등 현실적인 이슈들을 고민하고 건축가와 도시, 개발업자에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건축을 어렵게 느끼는 대중을 위한 교육도 NAI의 주력 사업이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예컨대 12세 이하 어린이들은 도시를 지어보는 ‘시티 게임’을 즐기고, 13~18세 청소년은 공공장소를 답사하고 건축 워크숍을 한다. 모든 프로그램은 체험과 토론 중심이다.

NAI는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다. 전시공간 확장, 접근성 제고가 목적이다. 내년 봄쯤 다시 문을 연다.

로테르담= 오미환기자

■ MVRDV 공동대표 야코프, 나탈리 부부

MVRDV는 반 베르켈의 유엔스튜디오, 렘 쿨하스의 OMA와 더불어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설계 그룹이다. 3명의 건축가 위니 마스, 야코프 반 라이스, 나탈리 드 브리스가 만들었고, 각자의 이니셜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MVRDV는 경기 안양예술공원의 명물인 안양타워, 인천 송도에 들어설 2,000세대 아파트 단지인 랜드마크 시티, 봉수대 모양으로 디자인한 주상복합 건축인 수원의 광교 프로젝트로 한국과도 인연이 많다.

로테르담의 사무실에서 만난 공동대표 야코프, 나탈리 부부는 MVRDV의 프로젝트와 철학, 로테르담이 현대건축의 중심이 된 배경을 들려줬다. 이들은 로테르담이 건축 실험장이 된 요인으로 인구 구성의 다양성, 젊은 건축가들에 대한 지원 등을 꼽았다.

“로테르담 인구 60만명 중 백인은 3분의 1밖에 안됩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절반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고요. 이런 다양성은 건축가들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요소이자 동시에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죠. 암스테르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도심에 현대적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지만, 로테르담은 전후에 완전히 새로 건설된 도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유로운 실험이 가능합니다. 혁신적 건축을 장려하는 네덜란드 정부의 정책, 창조적 기업과 활동에 사무실을 싸게 빌려주는 로테르담의 환경도 젊은 건축가들을 불러모으는 요소이지요.”

이들은 MVRDV의 건축 철학으로 ‘건물 안팎의 소통’과 ‘다양한 기능의 통합’을 강조했다. “네덜란드의 건축은 항상 거리와의 연결성을 중시합니다. MVRDV가 설계해 2013년 완공 예정인 마켓홀도 터널형 아파트와 농수산물 시장을 결합, 건물 자체가 거리 역할을 하는 ‘열린 건물’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개방성은 도시 공간의 공공성을 높여 줍니다. 건축물의 다기능 통합성은 성공적인 도시 건축의 관건입니다. 사무용, 상업용, 오락용 건물을 따로 지어 단순히 한 곳에 모아놓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각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해요. 삶은 조각조각 분리되는 게 아니니까요.”

로테르담= 오미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