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체 K사는 지난해 국제 행사 홍보물 발간과 관련, 모 부처 한 사무관에게서 구두로 의뢰를 받은 뒤 2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이 사무관은 보고서를 다른 출판사로 넘겨 인쇄했다. K사는 부당한 처사라며 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냈다. 그러나 이 사무관은 미계약 상태에서 진행한 일인 만큼 아무런 문제도 없다며 문서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더구나 이 사무관은 이후 K사가 다른 부처의 일을 수주하려 할 때에도 영향력을 행사, 불이익을 줬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사무관은 홍보물을 찍은 특정 출판사와 잘 아는 사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K사는 이 사무관이 무서워서 더 이상 정부 부처 관련 일에는 아예 눈길도 안 주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청 기업호민관실(중소기업 옴부즈만)에 접수된 한 사례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정부 규제 등에 민원을 내거나 이의를 제기할 경우 정부에서 이를 수용하긴커녕 오히려 민원인에 대해 보복하는 일이 빈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9일 본보가 중소기업청 기업호민관실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적지 않은 기업들이 정부의 보복을 우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 2,000여 곳을 대상으로 정부 규제 개혁 관련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다’는 대답(복수 응답)이 43.4%로 가장 높았고, ‘번거롭기 때문에’가 38.4%, ‘꺼림칙해서’가 29.6%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기업호민관실은 “꺼림칙해서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정기관의 보복을 우려,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실제로 민원을 냈다가 보복을 당한 경우와 같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조사에 응답한 기업은 159개였다. 특히 비보복 정책의 제도화에 대해 무려 86.7%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부 및 공무원의 민원인에 대한 비보복 정책을 제도화한 상태이다. 기업호민관실은 이러한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비보복 정책을 입법화하거나 훈령으로 강제할 것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 건의한 상태다. 그러나 해당 기관에선 “그 동안 정부 및 공무원의 민원인 보복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