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시어터(신체극)…, 생소하시죠? 한 마디로 몸의 언어로 관객과 소통하는 장르입니다. 표정조차 배제하기 때문에 마임과 다르고 일상적인 몸짓이기 때문에 형식미가 중시되는 현대무용과도 다르죠." 먼 체코의 한 실험극단에서, 그 낯선 장르로, 자신의 꿈과 끼를 발산하고 있는 한국인 단원 김준완(38)씨. 그는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언어인 몸짓 언어의 매력 하나만으로도 지금 내 삶은 즐겁다"고 말했다.
고교를 졸업한 뒤 유명 의류회사를 남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아가며 다니던 그는 스물아홉 살에 연극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실험극을 주로 하던 극단 '여행자'에 들어갔어요. 입단시켜 달라고 스태프들에게 밥과 술을 사가며 따라다닌 날이 셀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시절이 제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때였어요."
극단 활동을 5년쯤 하고 조금씩 매너리즘에 젖어들 즈음, 그는 체코의 신체극 실험극단 '팜인더케이브'의 연출자 빌리엄 도초로만스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팜인더케이브는 스페인의 국민시인이자 극작가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가족농장 이름을 따서 2001년 창단한 극단으로, '이민자들의 노래'라는 작품이 2006년 에딘버러프린지페스티벌에서 3개 부문 상을 수상한 뒤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2005년 의정부국제음악축제와 2007년 국제공연예술제에 초대돼 국내 팬들에게도 아주 낯설지는 않은 극단이다. "한국에 왔을 때 제 연기를 본 거죠. 쉬면서 재충전도 할 겸, 2007년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그는 힘겨웠던 팜인더케이브 초년 시절 일화들을 들려줬다. "연출가가 그렇게 와달라고 꼬드겨놓고선, 정작 왔더니 '한국 배우는 게을러. 흉내만 낼 뿐 진짜 연기를 안 해' 하면서 자존심을 마구 긁더군요. 감정이 몸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단원들이 일부러 저를 화나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는 "당시엔,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나 싶더라"고 말했다.
지난 달 28일 그를 만났을 때는 신작 '더 시어터' 공연을 마친 직후였다. "브라질 인디오들의 지방축제를 모티프로 신분사회를 비판한 극이에요." 단원들은 한 달간 합숙하며 낮에는 무술, 춤 등을 배우고 밤에는 매일 축제를 일처럼 즐겨야 했다고 한다. 준비 기간만 1년 반. "자신의 고유한 동작 수십, 수백 개 중 하나를 골라 한 장면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제가 제 자신을 연기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러니 제 대사가 한국어일 때도 있죠."
프랑스, 우크라이나 등지의 다국적 출신 단원들로 구성된 극단이지만 언어 장벽이 별 문제가 안 되는 것도 그런 점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언어도, 국적도, 인종도 전혀 문제가 안 돼요. 그러니 한국에서도 해볼 만한 장르입니다."
그의 월급은 400유로. 한화로 60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그래도 그는 "최소한 10년은 이 극단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덴마크의 세계적 실험극단 '오딘'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어요.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이곳이 지금 제 자리임을 알거든요."
신분과 차별 너머의 건강한 소통을 지향하는 그의 연극 '더 시어터'는 어쩌면, 아마도, 그의 삶 자체의 이야기인 듯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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