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발목이 잡혀 ‘올 스톱’됐던 주요 경제정책들이 다시 속도를 낸다. 그 동안 정부와 여당은 행여 선거에 악재가 될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민감한 사안의 추진을 전면 보류해 온 상황. 선거가 끝나면서 한동안 서랍 깊숙이 처박아 뒀던 서류들을 다시 꺼내 들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개혁 과제들은 한참을 묵힌 탓에 이미 추진 동력이 식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엔 흐지부지되는 정책들이 적지 않을 거란 얘기다.
전문자격사 선진화 제도
약사, 변호사 등 전문 자격사의 진입 문턱을 낮추는 것은 현 정부 대표적 개혁정책의 하나. 이해집단 반발로 작년 말 이후 추진이 전면 중단됐지만 하반기부터 다시 속도를 내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남진웅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간병 돌봄 보육 등 5대 유망 서비스 육성방안 등 급한 현안을 6월에 마무리 하면 7월부터는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이해집단의 저항은 여전히 견고한데, 지난해 한차례 좌절을 경험했던 정부는 추진의지가 그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 국장은 “전선이 많으면 힘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화와 협의가 쉬운 것부터 추진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일반의약품(OTC) 슈퍼마켓 판매, 영리법인 약국 허용 등 특히 민감한 현안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공공기관 표준연봉제 도입
노동계 반발 등 그 파괴력으로 인해 선거 이후로 일정을 미뤄놓은 사안. 같은 직급이라도 직무와 성과에 따라 연봉에 최대 30% 차이가 나도록 하고, 이런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에 한해 임금피크제를 전제로 한 정년연장을 인정해주는 것이 골자다. 임해종 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은 “선거 탓에 그 동안 논의를 전혀 하지 못해왔지만, 6월부터는 논의를 재개할 계획”이라며 “너무 세부적인 지침을 공공기관에게 줄 경우 노조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어 수위를 좀 낮출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유재산 관리강화
노조나 민간부문이 아닌 정부 각 부처들의 반발로 제동이 걸렸던 사안. 부처별로 방만하게 관리되어 왔던 국유재산에 대해 ▦종합적인 수급조절 시스템을 갖추고 ▦무상 임대나 사용료 감면 기준을 엄격히 하며 ▦필요시 적극적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재훈 재정부 국고국장은 “부처간 의견 조율을 거쳐 가급적 빨리 법제화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여러 부처에서 나눠 먹기 식으로 관리해 온 국유재산을 재정부에서 통합 관리하겠다던 당초의 의욕적인 목표에 비하면, 몇 걸음 후퇴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이전
정부는 이달 중 지방이전협의회를 열어 LH 이전지 문제에 대한 협의를 재개할 예정. 전북 전주(옛 토지공사)냐 경남 진주(옛 주택공사)냐, 일괄 이전(경남)이냐 분할 이전(전북)이냐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것. 국토부 관계자는 “선거도 끝났으니 가급적 서두른다는 방침이지만, 워낙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타
담배세ㆍ주세 인상 문제도 어떤 식으로든 다시 공론화될 가능성이 높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사안으로 아직 입장 정리가 안 돼 있다”고 말했지만, 정부 내 인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 다만, ‘죄악세’ 논란 등 부정적 측면을 어떻게 잠재울 지가 관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정부보다 보건복지부가 전면에 나서서 건강부담증진금을 높이는 방안으로 이슈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반대가 적지 않은 쌀 조기 관세화는 9월말 이전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오는 12일 지금까지의 전문가 중심 토론회에서 벗어나 직접 이해당사자인 농민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임정빈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조기 관세화를 위한 사실상 마지막 논의 절차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영리의료법인 역시 윤증현 장관은 “하반기 본격 재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신용 및 경제 사업 분리 등을 골자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도 6월 이후 재추진될 전망이다. 워낙 많은 사안들이 한꺼번에 집중됨에 따라 정책 향방에 따라 하반기 경제ㆍ금융계가 큰 몸살을 앓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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