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합반이었던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때의 일이다. 새 반장 선거를 하는데 선생님이 '전지전능하신 권력'을 포기하시고 후보자 없이 마음에 드는 이름을 적으라고 발표했다. 우리 반 남자들은 지난 1학기 동안 생김새는 공주, 성적은 1등, 성격은 팥쥐 같은 여부반장에 주눅 들어 지냈다.
그 '팥쥐'에게는 몸종처럼 데리고 다니며 부리는 '콩쥐'라는 친구 S가 있었다. 나이도 많고 덩치가 크고 지능지수는 약간 떨어지는 아이였다. 즉각 이상 기류가 흘렀다.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콩쥐를 찍자는 여론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았다. 선생님이 모르시는 '합의 투표'에 뜻밖에 여학생들의 호응까지 좋았다.
개표가 시작되자 이변이 일어났다. 선생님도 깜짝 놀라는 팥쥐와 콩쥐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 콩쥐인 S의 표가 개표될 때마다 우리는 환호를 질렀다. S는 칠판에 자신이 이름이 적혀있는 이유조차 몰랐다. 개표 결과 불과 1표 차이로 힘겹게 팥쥐가 2학기 부반장이 되었지만 팥쥐는 울며 나가버렸다.
그 뒤 부반장 팥쥐는 콩쥐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오늘 6ㆍ2지방공동선거일이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 돌아갈 것이다. 꼭 투표할 것이다. 착한 콩쥐에게 투표했던 그 마음처럼 낮고, 춥고, 어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당을 떠나서 사람이 따뜻한 후보에게 내 8표를 모두 행사할 것이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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