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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바람과 돌들이 노래 부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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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바람과 돌들이 노래 부를 때까지

입력
2010.05.2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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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향해 걸어가기 위해 제주에 왔네

관덕정에서부터 걸었네

명월 지나 애월바다 마라도며 다랑쉬오름

그대를 만나 서로의 눈동자에 눈부처를 새기고

함께 길을 가려 햇볕과 비바람의 날 걷고 걸었네

바람과 돌, 오름의 전설이 숨 쉬는 땅

내 눈 모자라 다 보고 또 못 보네

유년의 기억을 부르는 바람개비의 풍차가

가던 발길을 설레게 하며 멈추게도 했네

개발로 파헤쳐진 아름다운 곶자왈도 보았네

유채꽃 흔들리는 노란 꽃 그늘 아래 쓰러지던

할머니와 어머니와 어린 누이의 넋들이 손짓하기도 했네

붉은 철쭉꽃 아래 으깨어진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내 형제들의 비명이 들려오기도 했네

쓰러진 것들이 일어나 함께 걷는 나 여기 제주에 왔네

그대를 향해 걸어간다는 것

바로 내 안의 생명과 평화를 얻기 위한 일

내 안으로 걸어가네

바람과 돌들의 말에 귀 기울이네 내 귀는 자꾸 가물거리는데

제주의 모든 바람과 돌들이

생명과 평화의 말로 노래 부를 때까지

걷고 또 걷겠네 그대에게 가는 길 멈추지 않겠네

● 제주도에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겼다는 걸 알고 찾아가서 걸어봤습니다. 하루 종일 걸을 작정이었는데, 몇 시간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더군요. 생명과 평화의 말로 노래 부를 때까지 걷고 또 걷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더군요. 굽은 길을 곧게 펴고 자갈길을 포장하고 10차선, 12차선, 20차선 너른 대로를 만들면 생명과 평화의 말로 노래 부를 때까지 걷고 또 걷는 일이 쉬워지는 것일까요? 걸어가는 그 길이 힘든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생명을 알 것이며 평화를 알겠습니까?

소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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