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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교가는 랩" 아이들이 신났어요/ 5일 어린이날… 작곡가 이강산씨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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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교가는 랩" 아이들이 신났어요/ 5일 어린이날… 작곡가 이강산씨 화제

입력
2010.05.04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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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제가 좋아하는 샤이니의 '링딩동'처럼 신나요." "○○에 재미난 내용이 넘쳐요." "○○가 자꾸 입에서 맴돌아요."

○○는 무엇일까.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주곡초등학교 전교생 130여명은 이구동성으로 '교가'라고 답했다. 살짝 낯설었다.

이날 조회시간, 교가 합창순서가 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고 리듬을 타며 목이 터져라 불렀다. 본디 교가란 엄숙하고 무거운 게 보통인데 아이들은 신명이 나있다. 게다가 개교한 지 두 달밖에 안된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다른 학교에서 온 전학생들, 그새 교가를 2절까지 몽땅 외운 모양이다.

랩도 교가가 될 수 있다

잘나가는 걸그룹이나 아이돌그룹의 대중가요가 아닌 교가를 아이들이 이토록 애창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6학년인 한재현(12)양은 "다른 학교는 교가가 지루한데, 우리 교가는 빠르고 신나요"라고 귀띔했고, 이솔지(11)양은 "부르기 쉽고, 재미있어서"라고 답했다.

교가가 애창곡이 된 건 작곡가 이강산(42)씨 덕이다. 주곡초등학교는 그의 공을 높이 사 이날 학교에 초청해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씨는 "제가 만든 교가 중엔 랩도 있고, '야호' '랄랄라'등 재미난 가사도 많다 보니 아이들이 잘 따라 부르는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이씨는 원래 동요전문 작곡가다. 1989년 KBS창작동요대회에서 '노을 지는 풍경'으로 우수상을 거머쥐면서 데뷔한 이후 '하늘나라 동화' '화가' '그림 그리고 싶은 날' '친구에게' 등 무려 500곡 가까이 동요를 작곡했다. 91년 MBC창작동요제 대상, 93년 KBS 창작동요대회 대상 등 주요 대회 수상기록만 15회가 넘는다. 98년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에 실린 '하늘나라 동화'를 비롯해 '그림 그리고 싶은 날'(작사), '친구에게'등

4곡이 초ㆍ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그의 실력은 사계(斯界)의 인정을 받고 있다.

장애가 작곡의 길로 이끌다

지금은 동요 작곡가로 나름 성공했지만 그 시작엔 남다른 아픔이 있었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했던 이씨는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공놀이 대신 풍금을 연주했다. 자신의 장애를 업신여길까 싶어 친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독창도 수없이 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그의 노래실력을 인정해줬다.

하지만 창작동요대회에는 나갈 엄두를 못 냈다. 불편한 몸이 TV에 비춰지는 게 싫었기 때문. 대신 다른 사람에게 곡을 써주기로 결심했다. 장르는 "어렸을 때 병으로 어두웠던 성격을 밝게 했고, 마음이 슬플 때도 위로가 됐던" 동요를 택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힘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교가 작곡은 지인의 부탁에서 비롯됐다. 2003년 경기 남양주시 창현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전남 광양시 중마초교, 경남 양산시 성산초교, 인천 학산초교, 서울 구룡초교 등 전국 50여 개 신설 초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하고 작사했다.

단돈 20만원만 받았다. 교통비와 식비 등을 빼면 그야말로 남는 장사도 아니다. 그러나 우러나오는 사명감이 그를 이끌었다. 이씨는 "아이들의 교육 환경은 나날이 달라졌고, 아이들은 이제 대도시 아파트에서 살며 대중가요를 듣는데 교가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씨는 '소가 밭을 매고' '개울이 흐르고' '아득한 마을에 굴뚝'등 현실과 동떨어진 가사를 바꾸고, 엄숙하고 느린 리듬은 경쾌하고 밝게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교가를 즐겨 부르는 걸 보면 절로 힘이 난다"고 웃었다.

동요와 교가가 사랑 받으려면

새로운 도전목표도 세웠다. 첫 과제는 현재 20대 중에서 동요를 작곡하려는 젊은이를 육성하는 일. 그는 "전국에 200여명의 동요 작곡가가 활동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며 "동요에 대해 지도해주고, 그들과 함께 신세대 교가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존 동요와 교가에 대한 정리 작업도 할 계획이다. 이씨는 "제목도 모르고 부르는 동요가 부지기수고, 하물며 교가의 역사 등에 관한 자료도 전혀 없다"고 저간의 사정을 속상한 듯 읊조렸다. 그는 정리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동요가 섞인 질문으로 대신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의 제목이 뭘까요?" 10명 중 9명은 '푸른 하늘'이라고 답한단다. 정답은 '반달'이다. 그가 거 보라는 듯 눈을 찡긋했다.

남양주=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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