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무소유(無所有)보다는 모두의 소유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어떤 다짐이든 말과 달리 실천은 어렵다. 법정스님이 설파한 무소유는 특히 그렇다.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게 인생인데, 이를 버리려면 큰 용기와 해탈이 필요하다.
서길용(65) 경희대 도예학과 명예교수는 조금 달랐다. 지난해 8월 말 20년 간 몸 담은 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서 교수는 평생 공들여 빚은 도예작품 100여 점을 최근 학교에 기증했다. 서 교수는 벼 보리 조 등 곡물을 도자기에 붙여 모양을 내는 ‘곡물상감기법’의 창시자로, 그의 작품은 중국 인도 그리스 등에서도 전시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개인전 당시 판매가를 기준으로 따지면 이번에 기증한 작품 가격은 3억6,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는 “내가 만들었으니까 내가 가져가야 한다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다”며 “개인미술관 설립도 잠깐 생각해 봤는데 예술가의 도리가 아닌 거 같아 그만 뒀다”고 기증 이유를 털어 놓았다.
가톨릭 신자지만 서 교수는 스스로 법정스님의 팬이라고 자부한다. <무소유> 가 처음 출판된 1970년대부터 법정스님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그는 “작품 기증은 법정스님이 쓰신 <무소유> 와 함께 <아름다운 마무리> 의 영향이 컸다”며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온 날과 평생 한 일들에 대해 감사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무소유> 무소유>
자신이 지도하는 한 학생의 질문도 머리를 때렸다. ”퇴임하시면 이제 교수님 작품을 볼 수 없겠네요”라는 서글픈 한 마디였다. 서 교수는 “집에다 바리바리 싸 놓으면 뭐하겠나. 사실 자식들은 기증을 만류했지만 도예가로 살아온 입장에서 내 작품을 학교에 두고 가는 것이 법정 스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말했다.
기증한 작품 중 일부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 경희대 국제캠퍼스 예술디자인대학 2층 로비에 전시됐다. 부피가 큰 작품들은 곧 같은 건물 1층 로비에 자리잡을 예정이다.
서 교수는 “내가 내려놓으니까 모두가 소유하게 됐다”며 “창작을 하는 공간에서 내 작품을 통해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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