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김중수 총재가 첫 주재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4월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2.0%로 유지키로 결정했다. 역대 최장 기간인 14개월째 동결이다. 최근 경기전망 지표가 나빠 금리 동결은 이미 시장에서 예견된 일이었다. 소비자물가가 2%대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기선행지수의 2개월 연속 하락, 유럽 국가의 재정위기 등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실상 실업자가 400만명을 웃도는 등 고용 악화도 금리 동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이변은 없었다'고 평가하는 배경에는 대통령 경제수석 출신인 김 총재가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시장의 기대는 이미 김 총재 내정 당시부터 '상반기는 물론 연내 금리 인상도 쉽지 않다'는 쪽으로 급격히 쏠려 왔다.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지나치게 강조해온 그의 언행 탓이다.
정부가 열석발언권까지 행사하며 출구전략 시행을 늦추도록 한은을 압박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만큼 김 총재가 통화정책의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얻으려면 정부와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통해 냉철한 경제 인식을 보여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어제 김 총재의 현실 진단은 관변 학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는 "가계부채가 늘었지만 금융자산도 많이 늘어 국가경제에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은이 며칠 전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가계부채가 소득보다 빠르게 늘어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경고음을 울린 것과는 한참 동떨어진 인식이다. 그는 국가부채에 대해서도 "유럽 등에 비해 부채비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고, 정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다"며 낙관론을 폈다. 역시 국내 연구기관은 물론 IMF와 국제신용평가 회사들까지 우려의 시각을 보이는 것과 크게 배치된다.
한은 총재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정책 공조에만 신경 쓰다 출구전략 시기를 놓치면 순식간에 경제안정 기조가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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