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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논문대필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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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논문대필 권하는 사회

입력
2010.03.1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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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자들의 출정식이 출판기념회 형식을 빌려 연일 열리고 있다. 대형서점에서는 저자의 친필 사인회가 열리기도 한다. 공식적인 의정 활동 외에 하루에도 서너 건 이상의 애경사를 챙겨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차분히 책상에 앉아 자서전이나 정치적 소견을 담은 평론서를 집필했으리라 믿는 순진한 국민이 있을까. 정치인들의 저술 행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필 작가를 고용하여 쓴 것으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기업형 논문대필까지 성업

조기 퇴직과 수명 연장으로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많은 직장인들이 대학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런 수요에 맞춰 대학마다 앞 다퉈 비슷비슷한 이름의 학위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일종의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사이에 독버섯처럼 기생하는 것이 논문 대필업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기업형 논문 대필업 광고가 버젓이 나돌고 있으며 공식적인 시장가격이 형성될 정도로 성업을 이루고 있다.

저작권 측면에서 본다면 논문이나 저서는 실제 집필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표시할 권리를 갖는다. 대필 작가를 고용하여 쓴 책이나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것은 '부당한 저자표시'로서 표절에 해당한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사의 자서전이나 평론서를 대필하는 작가를 유령작가(ghostwriter)라고 하는데 이런 유령작가가 집필한 것을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공인 명의로 출판된 저서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직접 썼는가가 아니라 그 내용의 진실성과 신뢰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위 논문의 경우는 다르다. 학위 논문은 유령작가에 의해 작성되고 본인의 배서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문 세계에서 최소한의 금도가 있다면 그것은 학위 논문의 염결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위 논문의 대필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와 같은 표절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철저한 논문 심사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학위 논문 중에는 논문 심사를 요행히 통과한 것들이 상당수 있다.

학위 논문의 표절이나 대필이 드러나면 학위 취소뿐만 아니라 임용 취소 등 소급적 절차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표절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출판한 지 2년 정도가 지나면 징계 시효가 지났다고 하여 불문에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본래 징계 시효라는 것은 징계 사유가 종료된 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책이나 논문이 회수되지 않고 독자들에 의해 읽힐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면 표절로 인한 피해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므로 표절의 시효는 아예 시작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출판한 때부터 시효를 계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

논문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비판 과정을 통해 검증되는 데에는 대체로 공표된 지 2~3년, 어떤 경우는 5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따라서 표절 행위에 대해 일반 비위사실에 적용되는 2년짜리 징계 시효를 적용해버리면 시효에 걸리지 않을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

시효 없이 엄격한 징계를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재검표 사건에서 고어 후보를 대리하였던 유명한 헌법학자인 하버드 로스쿨의 트라이브(Tribe) 교수 이야기다. 이 교수는 2004년에 자신이 19년 전에 쓴 책에서 19개 단어로 이루어진 문단을 인용 표시 없이 썼다는 이유로 표절 시비가 일자 깨끗하게 인정한 사례가 있다.

표절에는 시효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대필 논문의 유혹을 상당부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학교나 연구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 및 타인의 표절 등 학문적 부정직 행위에 대하여 비판하고 보고할 의무를 져야 한다. 미국의 유수 대학들은 명예규정(honor code)에서 교수와 학생들에게 이러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표절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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