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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엄마들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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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연극 '엄마들의 수다'

입력
2010.01.2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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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네들의 열기로 터질 것 같다. 한쪽 구석에 궁둥이 붙일 틈을 겨우 냈다. 제3회 연극열전의 두 번째 무대 '엄마들의 수다'가 공연 중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은 여인들의 천국이다. 그 중심에 말의 잔치가 있다.

수다는 이 시대의 당당한 문화 코드다. 창작 동인의 이름이며, TV 프로 이름이다. 그렇다면 수다라는 형식을 앞세운 사실의 편린들은 하나의 진실이 될 수 있는가? 산통을 참다 못해 터지는 쌍소리까지 이 무대는 수다의 진영으로 끌어안는다.

토크쇼 식 무대에는 분명 나름의 강점이 있다. 연극적 관례를 전혀 몰라도, 아무런 의식 없이 봐도 무대를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없다는 점은 만원 사례의 공신이리라. 여성의 육아 우울증 등 극심한 감정 기복, 건망증 등의 에피소드가 속사포처럼 연발된다.

무대는 여성성을 출산으로 한정시킨다. 앞둔 여성이거나 경험한 여성이거나 출산은 여성만이 오롯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 무대는 그 경험에 기대어, 오로지 내 아이가 최고라는 가족이기주의를 큰 소리로 당당히 외친다.

객석과의 사이에 있는 것으로 상정되는 '제3의 벽'은 이 연극에서 아무 의미도 없다. 객석과의 소통은 한 배우가 객석을 향해 "입덧이 있었는지" 직접 묻거나, 두 손으로 아이(물론 인형)를 안고 있다가 "애 보느라 머리를 제대로 못 감았다"며 바로 앞 관객에게 머리를 긁어달라고 하는 식이다.

무대에서 노출되는 일련의 상황은 페미니즘의 한국적 현재를 여과없이 표출한다. 이에 따르면 여성성은 피억압자로서 갖는 반대급부다. 본격 개막 전, 한맺힌 원귀 차림의 배우가 한 명 나와 무언가 저주의 말을 뱉을 듯 말 듯하다 들어가는 것으로 무대는 길을 연다. 곧 이어 산모의 출산 장면이 잇따른다.

이 무대는 분명 성인물이다. 출산 후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지만 그래도 모른 척한다는 등의 말을 코믹하게 털어놓지만 생활 풍경에 그친다. 무대에는 성적 함의가 자욱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사회적ㆍ생물학적 자의식을 강조한 '버자이너 모노로그'와 선연히 구별되는 이유다.

객석에 대한 장악력이 여성 간의 공감대에만 의지한다는 점은 이 작품의 강점이자 한계다. 쇼핑하다 아이를 잃어버려 하늘이 노래진 엄마가 아이를 다시 찾았을 때의 기분은 이렇게 절절히 표현된다. "아이의 심장 소리에서 위로를 받고 있더라"고. 그러나 표현상의 재치는 극히 일부다.

과유불급이 대부분. 출산 후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 문제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배우가 바나나를 먹으며 "반복적 운동" 운운하며 남편 잡는 법을 '강의'하는 장면이 꼭 필요했을까. 이 극은 말초적 자극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시켰다. 건강한 페미니즘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28일까지.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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